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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Jun 19. 2023

누가 노조에 돌을 던지는가

프레시안 

대부분이 노동자인 나라에서 노동자와 노동자 단체에 대한 혐오가 어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22살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담긴 법전과 함께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것이 1970년이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고 노동자 전태일은 외쳤다. 50년이 지났는데도 노동자가 분노와 절망으로 스스로의 몸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양회동열사 공동행동”에 민교협도 함께 한다. 민교협 회원으로 글을 썼다.




[양회동을 보내며] 양회동 위에 노동자 2천만의 생존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지난달 1일 분신해 숨진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기리는 추모제가 오는 17일 오후 5시 서울 청계광장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양 지대장을 떠나보내는 이들이 고인의 죽음을 통탄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보냈다. 세 편의 글을 순차적으로 전한다. 편집자.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50조 1항과 2항이다.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던 중에 발생한 사고는 법 제37조 제1항 제1호가목에 따른 업무상 사고로 본다: 1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수행 행위, 2 업무수행 과정에서 하는 용변 등 생리적 필요 행위, 4 천재지변·화재 등 사업장 내에 발생한 돌발적인 사고에 따른 긴급피난·구조행위 등 사회통념상 예견되는 행위..." 산재법 시행령 제27조 1항 중 일부다.

지극히 당연한 내용인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용자보다 노동자가 항시 더 많았고, 공급되는 일자리보다 일자리 수요가 매번 넘쳤다. 일하려는 사람은 많았고 일자리는 그보다 적었으므로, 스스로 벌지 않으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었으므로,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더 많이 더 오래, 그러면서도 더 싸게 노동자는 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혹여 죽을 만큼의 위험이 도사리는 환경이더라도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먹고 사는 밥벌이를 해결할 수 없으니 빈곤과 착취는 노동의 필연적 결과였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노동자는 하루 12~18시간을 일했고,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18~19세로 상류층(38~39세)보다 스무 해를 더 일찍 죽었다. 생존에 대한 절박함은 1819년 의회개혁과 노동자의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로 이어졌으나 11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부상당했다. 이후 집회와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사 금지법'이 제정되어 노동운동을 주도하거나 가담한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타국으로 유배당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노동자는 하루 12~16시간 일했다. 값 싼 일당으로는 한 달을 일 해도 노예 같은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의 노동자는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강행했다. 파업과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와 민간인 10여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재판에 회부된 8명 중 5명은 급진 사상을 가진 위험인물이란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60년대 후반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 취직해 재단사로 일한 전태일은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법전을 안고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다. 1978년 동일방직은 노조를 결성한 직원을 탄압해 해고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인권 탄압이 자행됐다. 1979년 YH무역의 부당 폐업에 항의하는 노동자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사망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이석규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노동법을 몰라 정부의 공식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았고, 추가 수당 없이 철야 작업을 하던, 아무 때나 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노동자가 합숙하던 시절이었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지원에 대한 법률 등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이 보장되지 않던 시절, 누군가의 결핍과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투쟁 위에서 만들어졌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본질적으로 불평등 계약일 수밖에 없는 개별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계약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배경으로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가 노동자들의 단체 활동을 보장한 법이다.

2022년 6월 61명, 7월 82명, 8월 79명, 9월 84명, 10월 75명, 11월 64명, 12월 55명, 2023년 1월 60명, 2월 63명, 3월 73명, 4월 59명, 5월 83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총 838명이 산업재해로 죽었다. 추락 21명, 깔림 15명, 끼임 10명, 물체에 맞음 10명 등 2023년 5월의 죽음 가운데 67%가 건설 및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후진국 산재로 불리는 죽음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22 산업재해 현황'에서도 건설업 종사자 2만7432명이 사고재해를 당했고 402명이 죽었다. 건설업의 사고사망자 수가 업종 중 가장 많았다. 2021년엔 2만6888건의 사고재해 중 8225건이 '떨어짐'으로 인한 사고였고, 417명의 사망자 중 248명이 '떨어져' 사망했다. 그해 노동부는 전국의 건설현장을 점검했고, 그 중 69.1%인 2448곳의 건설현장이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 미비로 지적당했다.

5월의 죽음 가운데에는 5월 2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 잔디밭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한 건설노동자 양회동의 죽음도 있었다. 건설 기간에 안정적 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노동자 대부분이 일용직인 건설 및 공사 현장에서는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안전장치 미설치 등으로 인한 사고가 흔하게 발생한다. 타 노조와 달리 건설노조 조합원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한 것은 이러한 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이즈음 정부와 언론은 "깡패 조폭 집단", "공갈 협박범"과 같은 프레임을 건설노조에 씌워 노조의 확장을 견제했다. "연봉 2억, 일 안하고 돈 버는 가짜 노조"란 관련 부처 장관의 노조 혐오 발언도 이때 나왔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의 건설 현장을 책임지는 노동조합 3지대장을 맡아 활동하던 노동자 양회동에 대한 탄압도 정부의 건설노조 죽이기의 연장선이었다. <조선일보>는 양회동의 죽음에 대해 조합원의 자살방조 및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하며 노조 및 노동자 혐오를 부추겼다.

자본과 결탁한 공권력과 언론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우리나라 전체 부의 60%를 차지한다는 상위 10% 기업과 자본의 천문학적 부에는 침묵하면서 설사 사실일지라도 노동자의 1, 2억 연봉은 왜 매번 윤리적 결함과 연결하는지,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고, 양회동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과 희생, 저항 위에서 만들어진 노동환경을 누리면서도 왜 노동자와 노동자 단체를 스스로 폄하하는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과 가장 낮은 최저 임금액, 가장 많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 가장 많은 주당 근로시간 국가란 오명은 우리 뿐 아니라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 텐데 실체도 없는 귀족노조, 황제노조란 자본과 언론의 프레임을 언제까지 우리 노동자의 입을 통해 재생 반복할 것인가. 언제까지 스스로를 살해해 분노와 절망을 말해야 하는가.

근로시간, 최저임금, 강제근로금지, 폭행금지, 중간착취배제, 부당해고 금지 등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근로기준법 각 조항에 묻힌 노동자의 죽음과 고통을 생각하면 노동법은 한 조항, 한 조항이 비애롭고 비통하다.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노동법 어디에 묻혀 나와 당신, 2000만 노동자를 또다시 살게 하는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지난달 분신해 숨진 노조 간부 고(故) 양회동 씨에 대한 범시민 추모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하 안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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