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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Jun 23. 2023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

경인일보 수요광장 


여성주의 관점은 우연히 얻은
기득권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으로
부끄럽고 상처받는 일이겠지만
다층적 정체성 지닌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은 적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얘기한 이가 있었다. 남동생이 있었으나 맏딸이 제사에서 아들보다 먼저 술과 절을 올리는 집안에서 성장한 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반장을 맡아 했고, 여중·고를 거쳐 대학은 모두가 여성인 학과였고, 취업한 곳도 대부분이 여성인 직장이었다. 성비가 유일하게 비슷하던 초등학생 때는 굳이 남학생과 비교될 일이 없었고 이후 소속된 공간에서도 비교되거나 경쟁해야 할 남성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젊은', '여성'이란 이분법적 언어들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대학에 취업한 이후였다. 나이 많은 남성이 상대적으로 나이 적은 여성과 나누는 상호작용 방식, 일테면 공적 공간에서 의견을 손쉽게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일에서부터 가정에서 자녀에게나 할 법한 호통까지, 남성동료에게는 하지 않는 은근하고도 노골적인 권력과 차별의 행사는 차별받아 본 경험이 없던 그녀에게 오히려 민감히 포착됐다. 그렇다 해도 그 현상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그리 명명한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차별을 가하는 남성도, 차별받는 여성도, 이들의 소통을 목격한 이들도 그러한 소통이 문제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남성은 이미 체화된 기득권이라 자신이 자연스런 보편이라 여기기 쉬워 스스로 의문을 품기도, 문제 제기하는 이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여성 또한 내면화된 위계적 문화를 벗어나 사고하기는 쉽지 않았다. 성에 대한 차별을 미묘하게 경험한 일부 여성만이 스리슬쩍 문제를 제기해 보지만, 익숙한 문법을 벗어나는 일은 "그래도 어른한테 그러면 되겠니?" 등의 예의없음으로 치부되거나 "원래 그런 사람이니 네가 이해해" 등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으로 해석되기 쉽다고 그녀는 탄식했다.


언젠가 여교수회를 만들어 보자던 제안에 이미 기득권인 집단에서 굳이 남녀를 선긋기 하는 모임은 시대착오적 아니냐는 말을 나 또한 들었다. 차별은 모든 공간에 존재하나 그 자체로 기득권인 공간에서는 오히려 차별을 드러내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여성주의 관점은 약자나 타자의 여러 목소리 중 하나다. 그래서 여성주의적 관점은 남녀평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으로 작동한다. 성의 대결이 아닌, 타자로서 여성의 경험으로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관찰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하지 않지만 약자, 타자로 상처받은 사람은 당연해서 상처가 되는지도 몰랐던 일상에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낸다. 여성주의 관점을 견지하자는 것은 약자나 타자로 일상을 재구성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난 주, 대학에서 아직은 젊은 직원이 희망퇴직을 했다. 의례적 인사 끝에 학과와 대학의 갈등으로 중간에서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녀가 눈물 보일 정도로 힘들었던 학과에 내가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직원을 고려하지 않은 대학과 학과의 갈등, 그러니까 결국 교수들의 갈등 속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여성 직원으로 그녀의 마음 부침은 깊었고, 교수로서 나 또한 그녀의 고통에 동참한 셈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이해 못한다던 이의 차별 경험에 함께 분노하거나 여성모임을 통해 일상을 약자와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던, 그러면서 나는 당신들과는 같지 않다는 자의식 가득했던 입장에서, 교수로서의 기득권이 나도 모르는 사이 작동되어 누군가를 상처 냈다는 사실은 부끄럽기 전에 충격이었다.


여성학자 정희진 교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주의 관점을 지니는 일은 '우연히 얻은 기득권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상처받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다층적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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