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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L Mar 27. 2022

달짝지근한

단품요릿집

 


 감자 두 알을 골라 저울에 달았더니 2000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나왔다. 모자 밑으로 가려진 두 눈에 당황과 황당이 섞여드는 것을 재빨리 숨기고 얼른 저울에서 감자를 들어올렸다. 얌전히 감자 두 알을 원래대로 내려놓고, 그 옆에 봉지 한가득 담겨있는 2500원짜리 감자묶음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카레 한 번 끓여먹기 힘드네,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식재료를 집어들면서도 계속해서 감자 봉다리를 힐끔대며 이렇게나 많이는 필요 없는데,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동시에 고작 두 알에 이 천원을 소비하느니 쪄먹고 삶아먹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사는 1인가구는 이렇듯 뭐 하나 해먹는 것도 일이다.




 본가에 살 때엔 툭하면 끓이던 카레를 꽤나 오랜만에 만들었다. 다행히도 당근은 감자보단 훨씬 저렴해서 700원에 튼실한 놈으로 하나 골라왔다. 세일하는 카레용 돼지고기를 담고 처음 사보는 일본식 고체카레도 샀다.


 

 한가로운 주말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재료를 손질했다.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통돌이의 소음과 함께 잔잔한 피아노연주곡을 연속으로 틀어놓고 사 놓은지 오래되어 무르기 시작한 양파를 한 알 들고 왔다. 물컹물컹해진 부분을 도려내고 나니 절반이나 날아간 양파를 멋쩍게 쳐다보곤 적당하게 썰었다. 주먹보다 훨 작은 감자 네 알을 꺼내고, 굵은 당근은 반 정도 네모나게 썰었다.

 모아놓고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양에 흠칫하면서도 이미 다듬은 재료들을 어찌할 방법도 없어서 그냥 죄다 사용하기로 했다.


 깊은 냄비를 꺼내 돼지고기를 볶고 단단한 감자와 당근을 같이 넣어 볶는다. 감자가 어느정도 투명해진다 싶으면 국그릇으로 두어번 정도 물을 넣어주고 양파와 고체카레를 같이 넣는다.

 원래라면 따뜻한 물에 카레를 개어서 한 번 풀고 부어도 좋지만, 나 혼자 먹을 건데 굳이 그럴필요 있을까 싶었다. 부글부글 익어가는 카레를 휙휙 저어주면서 감자와 당근이 익을때까지 뭉근히 끓이면 끝.



 가장 기본적이고 투박한 카레가 한 솥 끓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도마와 칼을 씻고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을 정리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요리를 해야하는 상황이 올 때 가장 만만했던 음식 중 하나는 카레였다. 굳이 볶지 않고 그냥 모든 걸 다 때려넣고 계속 끓이기만 해도 완성되는 것이었으니. 한 번 만들면 양도 많아서 한 끼 식사를 끝내도 다음날 또 먹을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요리는 없는데, 뭐라도 만들어서 식사를 책임져야 할 때 가장 간편했고 또 가장 만만했다.




 자취를 한 뒤엔 쉽게 줄어들지 않는 양 때문에 만들기가 겁났었는데, 여전히 오랜만에 만든 카레는 5인분은 거뜬 넘기는 양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남은 카레는 유리 글라스에 담아 밀폐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당분간 끼니 고민은 안해도 되겠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큼직한 후드티를 하나 걸치고 아이보리색 모자를 풀 눌러썼다. 작은 가방에 읽다 만 책 한 권과 다이어리를 넣어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완연한 봄이 훌쩍 다가온 골목엔 따뜻한 바람에 날리는 매화꽃잎이 한가득이었고, 올려다 본 하늘엔 서서히 피어나는 벚꽃나무의 꽃망울이 한아름 걸쳐 있다.

 

 꽃잎나려 온통 분홍빛인 아스팔트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눈부신 오후를 걸어 도착한 복잡한 카페엔 한창 시험기간인지 과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대학생들이 가득이었다.

 


 널찍한 자리들을 피해 가장 구석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었다. 커피향이 풍기는 카페에서 수다를 떨지도, 노트북을 보지도,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고서 그저 가만히 앉아 책을 읽은 것은 카레를 만든 것처럼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등받이가 없는 높은 의자를 벽 가까이 붙여 그 벽에 등을 기댔다.


 방금 걸어온 길처럼 분홍빛이 가득한 책 표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보고 책장을 넘겼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의미를 모르는 달짝지근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머리 위에 달린 주황빛 조명이 하얀 종이에 스며들었다.


 딱 그 상황만큼 잔잔한 책을 하염없이 읽다보니 어느새 몇 장 남지 않은 책에 책갈피를 꽂고 닫았다.

 아껴읽기. 마음에 드는 책이 있을 때마다 하는 습관 중 하나이다.




 그새 바닥을 보이는 커피를 마저 들이키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자리를 비켜 카페를 나섰다.




 지금보다 어릴 적엔 자극적인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남들이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척 보기에도 교양있어 보이는 인문서적도 곧잘 읽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뭘 알고 읽었는지 싶다. 이해되지도 않는 어려운 단어가 빼곡한 책을 들고 다니면서 꼭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한 것처럼.

 이런책도 읽었다며 자랑하듯 말하고 다니고, 작가의 의견을 꼭 스스로가 생각해 낸 기특한 발상인냥 아는체하며.




 지금은 가끔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로 진열된 책은 그닥 잘 고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알아가듯,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시에 추구하는 스타일도 달라지듯 책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진다.


 

 

 요즘은 잔잔한 소설을 찾아읽는 편이다. 특히, 일본소설을 자주.

 이전엔 유명한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읽곤 했는데 어느샌가부터는 그냥 평화로운 일상을 그린 요리소설을 읽고 있다.

 

 어쩌면 추리소설보다 더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



 

 간혹 누군가는 이런 일본소설은 지루하기만 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을 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그래도 이런 잔잔한 소설은 읽다보면 나름 슴슴한 매력이 느껴진다.

 

 앉은 자리에서 나도 몰래 아작대고 씹어먹은 한 통의 아몬드처럼, 보글거리는 카레를 보며 오독오독 먹은 남은 당근처럼.


 

 실은 오랜만에 카레를 끓인 것도 오늘 읽은 책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단품요릿집에서 끓이는 카레의 향이 어렴풋 떠올라서, 그래서 나는 감자와 당근을 샀던 거다.


 

 언젠가 티비에서 고음 하나 없는 조용한 노래를 비판하는 누군가에게 유희열님이 말했던 "이런 노래를 들으러 몇 시간을 걸려서라도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라는 말처럼.

 

 꽃잎 흘러녹은 길에 발자국을 남겼다가 별 것 없이 돌아온 오늘, 아직 카레냄새가 남은 작은 방에서 마저 읽은 책은 마지막까지 잔잔하기만 했다.

 하얀 포렴이 걸린 작은 가게에서의 일 년이 마치 그림일기처럼 머릿속에 잔상으로 그려지기만 했을 뿐.


 

 안그래도 복잡한 하루의 반복에 때로는 이불같은 포근한 쉼이 필요하듯, 그저 기분좋은 봄바람 같은, 유명하지 않은 인디음악같은 책도


 충분히 괜찮다.






 "밥을 먹을 때만큼은 시시한 얘기를 하더라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무사시의 살을 만지고 싶다든가."

 "뭐?"

 ...


 누군가의 기분이 침울할 때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하자.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자.


 - 고미나토 유우키 “눈토끼 식당 차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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