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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L Jul 25. 2022

야생화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지난주보다 한층 꺾인 열대야 속에서 하루종일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헤드가 뜨거워져서 어떡하나, 하는 실없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글을 쓴다.


병간호다, 집안일이다, 생활비를 버네, 마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길에서 우연한 기회를 만나 좋은 인연을 쌓았고 경험을 쌓았던 시간에서 3개월의 짧은 인턴이 끝난지 벌써 한 달이 흘렀다.


 

 내 동기들은

 공기업을 목표로 차근차근 그들 각자의 리그를 밟아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곁에서 함께 일하며 참 많이도 배웠다. 화려한 언변, 적당한 아부, 그럼에도 꾸준한 노력. 솔직히 별다른 특기도, 이렇다 할 가치도 없이 살아온 나를 치켜세워주는 순수함을 보며 놀라기도 했고 여유로움이 그득한 생활 속에서도 성실히 제 길을 만들어가는 성실을 보며 약간의 질투가 섞인 존경심도 느꼈다.



 나는 인턴이 끝난 후 나름대로의 부족함을 느끼는 문서처리 실력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를 들으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꾸준히 갔던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독후감 공모전에도 참가했고, 수입이 끊기면서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만 원도 함부로 쓸 수 없을 만큼의 찌질함에도 당당하고자 노력했다.


 

 하루종일 식빵 한 조각을 질겅이며 두꺼운 노트북을 켜두고 스물 일곱 살에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소서를 써보고자 낑낑댔다. 별다른 실적도, 특출난 경험도 없다는 지독한 자기 객관화에서 기인한 마찬가지로 지독한 현타를 느끼며 그럼에도 썼다.

 이성보단 감성이 그득한 구구절절 편지같은 쪽팔린 자소서로 기대없이 계약직 구인광고에 지원했고, 면접을 봤다.


 사업에 대한 물음 따윈 일절 없는 형식적인 일개 계약직 면접에서 열정이 너무 과했나, 싶은 민망함과 창피함을 질질 끌며 뜨끈하게 달아오른 발을 동동 굴렀다.



 당장 다음달 생활비도 없는데 닥치는대로 해야지, 하는 현실적인 생각에서부터 무언가 하나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으로 이어지는 생각이 불면증을 만들어낼 때 합격 소식을 받았다.


 네 살 이나 많은 누나보다 한참 전에 취직해 공장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일할 때 신을 신발 한 켤레를 선물받았다. 가격표도 떼지 못한 새 신을 현관에 두고 코딱지만한 집을 돌아다니며 마주할 때마다 오묘한 마음이 울컥 새어나왔다.


 

 그리고, 나의 욕심과 당장의 현실의 저울에서 결국 다시 현실을 택하고 다시 한 번 더 당당하고자 마음을 다독였을 때 전화를 받았다.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딸에게

 휴학을 하고 병간호를 했던,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가장 예쁜 나이에 한 집의 살림을 도맡았던 딸에게, 내 삶이기 때문에 돈 한 푼 받지 않고 본가를 나와 삼 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던 딸에게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의

공백을 묻는 사람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한 것은 아닐까 자책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밥 한 끼 먹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고.

 

 

 아버지가 의미하는 밥은 가족과 함께 하는 밥이 아닌 남들과 함께하는 술이었고, 삼십년이 가까운 세월을 통해 참 지독하게도 변하지 않는 그 명제 때문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자식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쌍욕을 퍼부으며 네 인생은 잘못된 것이라 저주를 내리고, 너만 없었다면 본인은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울부짖는 휴대폰 너머의 말을 들으니 눈물도, 화도 나지 않았다.


 당신에게 나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다시

한 번 더 나는 나를 믿는 것에 힘을 실었다.



 내 인생은 잘못되지 않았으며

 내가 없더라도 당신이 더 나은 삶을 살았으리라 보장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별 것 없는 계약직이라 할 지 언정 꿋꿋하게 버텨 동생에게 여태 받았던 그 무수한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선물할거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마시고 울기만 하던 아버지 대신, 의식도 없으면서 자다가도 울컥 피를 토하던 엄마의 손등과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되뇌었던 아린 밤을 기억하며 흔들림없이 걸어갈 것이다.


 어디선가 본 한 문장을 기억하여 다짐한다.

 엄마, 당신은 그 때의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수고했어.



 먼 훗 날 나를 데려다 줄
그 봄이 오면 그 날에 나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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