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의 월즈 우승을 축하하며
일요일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강변CGV에 모인 800여 명의 열렬 T1팬들은 실버 스크랩스(Silver Scrapes) 음악에 맞춰 일제히 핸드폰의 나이트를 밝힌 체 머리 위로 올려 좌우로 흔들며 역사적인 2024 월즈 결승전 5꽉을 맞이하고 있었다.
실버 스크랩스는 롤게임에서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울러 퍼지는 음악이다. 대니 매카시(Danny McCarthy)가 2012년에 만든 일렉트로니카(덥스텝:1990년대 후반 런던 남부에서 시작된 전자 댄스 음악 장르) 곡이자 LoL e스포츠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이다. 당시에 양산되던 덥스텝 곡들이 다 그렇듯 지금 듣기에는 곡 자체가 이미 진부하고 뻔하여 빨리 잊혀질 예정이었으나, 시즌2 월드 챔피언십 방송 송출 중단 사건 때 이 곡을 반복으로 틀어댔던 것 때문에 일종의 밈(meme)화가 되어 유명해졌다. 시즌 3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자주 등장했으며, 덕분에 한국에서도 유명해졌지만 제목은 잘 알려지지 않은 채 BGM만 남아 유튜브와 시청자들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2019년 이전까지 월즈 우승팀이 탄생한 경우에 외국 서버에서는 경기 종료 이후 축하의 의미와 더불어 방점의 의미로도 쓰였다.
'롤(LoL) e스포츠 5세트(5꽉)의 상징'이 된 이 곡을 2024 월즈 파이널에서 듣게 되어 너무 감동적이었다. 큰 기대와 함께 지난 토요일 저녁 11시부터 시작된 월즈 결승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K T1(국내 리그 4위)과 중국 리그 1위 팀인 BLG가 맞붙어 끝내 5꽉까지 가는 치열한 경기 속에서 우리의 T1이 월즈 사상 5번 째이자 2년 연속 우승의 역사를 썼다. 이런 기록은 롤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으로 예상됨과 동시에 이런 결과를 이뤄낸 페이커에게 MVP가 돌아가며 유럽에서 펼쳐진 올 해 월즈는 마무리되었다.
이런 역대급 경기를 나는 강변CGV에서 많은 T1 팬들과 함께 관람하는 현장에 있었다. 우승까지 가는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5판 3선승제 게임에서 첫 게임의 승리는 매우 중요했다. 특히, 유리하다는 블루진영을 선택한 첫 게임에서 어이없게 패한 T1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한 출발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두 번째 게임에서 신승을 하였으나, 또 다시 3번 째 게임에서 패하면서, T1의 우승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4번 째 게임에서 우리의 '페이커'가 현재 무림의 지존이자 롤의 정점에 있음을 증명하면서 역사적인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그는 불사대마왕, 절대지존, 롤신이라 불리며, 결승전 MVP를 차지할 정도로 역대급 경기력으로 본인의 5번 째 월즈 우승과 팀의 월즈 2연패를 달성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롤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게이머 뿐만아니라, 관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그가 여전히 최정상에 있음을 증명했다. 결승전은 예상과 달리 T1이 1,2,3 세트를 초반에 연속으로 퍼블(퍼스트 블러드:선취점, 경기에서 제일 먼저 우위를 가져감)을 당하며, 불안하게 시작되었고, 결국 3세트가 끝난 시점에 2;1로 매치 게임까지 몰렸다. 어떤 경기든 초고수들이 맞붙는 경우에는 초반 판세가 매우 중요하다. 초반에 무너지면 상대방이 실수하지 않는 이상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잘 준비된 BLG에게 속수무책 당하며 그 날의 T1은 우승 가능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된 BLG는 강력한 공격형 챔피언을 앞세우고 속도전을 펼치던 앞 경기들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즉 속도전이 아닌 후반 밸류가 좋은 챔피언으로 구성하여 상대적으로 급한 T1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초반에 우위를 점해야하는 T1이 오히려 연속 킬을 당하고 불리해지며 불안감은 더욱 짙어졌다. 바로 그 순간, 벼랑 끝까지 몰린 경기를 뒤집는 슈퍼플레이가 불사대마왕 ‘페이커’를 통해 여러 차례 만들어지며 결국 4세트를 승리하고, 런던의 O2 아레나에 5꽉을 알리는 ‘실버 스크랩스’가 울리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평범하게 쓰이던 이 음악이 2015년부터 라이엇에서 5전제(Bo5) 경기에서 2:2 상황이 되었을 때 5세트 대기 화면에서 극적인 상황에서 풀세트의 긴장감을 폭발시키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어느덧 전통이 되어 덕분에 LoL e스포츠 팬들에게는 5세트, 일명 '5꽉'을 상징하는 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서양에선 'Silver Scrapes'라는 단어 자체가 풀세트 접전 2:2 상황의 대명사처럼 쓰여, 월즈가 아닌 다른 대회에서도 2:2가 확정되면 채팅창 곳곳에서 'Silver Scrapes'라는 탄성을 외치고 헤드뱅잉을 한다.
CGV에 모인 모든 팬들은 그 날 실버 스크랩스가 울러퍼지는 순간 누구 하나 예외없이 티원을 응원하는 상징으로 핸프폰을 들고 나이트를 킨체 머리위 좌우로 흔들면서 멀리 영국 런던에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을 보냈다.
그런 응원과 염원이 통했는지, 페이커는 그 어떤 경기보다 신들린 듯 역대급 경기력을 뽐내며, T1에게 월즈 우승컵인 소만사 컵을 선물하게 된다. 그의 경기력은 한계를 잊은 듯 최 정점에 있었고, 그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가 최고의 전성기가 된 듯하다.
경기 종료 후 중국의 LPL해설진들은 망연자실하는 상황에서도 상대편인 페이커에 대한 진심어린 리스펙을 하게 되는데요.
비록 많은 좌절과 시련을 맞닥뜨리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밤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들을 쫒아가야 합니다.
솔직히 마지막에 페이커선수가
파이널MVP 트로피를 들고 소감을 말하는데
페이커 선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걸 봤어요.
제 생각엔 위대하다라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는데요.
이렇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십여년 간 계속해서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한
집중력을 온전히 유지해오고 있는데요.
이것 또한 왜 페이커선수가 V5에 적합한지,
파이널MVP에 적합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간 e스포츠 관련해서 일을 해왔는데요.
오늘 페이커 선수의 다섯 번째 우승에 대해서
많은 롤 팬분들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여러분들이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간에
만약에 우리가 이처럼 페이커 선수와 같이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반드시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