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하루를 지향하며
언젠가 당신의 인생에도 ‘오늘부터 너는 혼자 힘으로 양말도 못 신게 되리라’고 말하는 신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리는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다. - 존 버닝햄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
전설적인 미드 시리즈물 중 단 하루의 긴박하고 치열한 삶을 묘사한 [24시]가 있다. 2014년 미국 폭스사가 만든 12부작으로 영국 런던에서 벌어지는 잭 바우어의 활약상을 담은 이야기다. 국제적인 테러사건에 맞서는 테러방지단(CTU) 소속의 잭 바우어는 초인적인 능력과 사명감으로 테러단을 상대로 긴박한 하루를 쉴세없이 보낸다. 실제 방영이 되고 난 이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하루를 날 잡아 꼬박 시리즈 1편을 본 적이 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24시간을 함께 하였다. 그 당시 느낌으로는 단 하루의 삶이 이토록 길었단 말인가? 라고 탐복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는 나는 어떤 날은 감사할 꺼리가 없어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하루의 역설적인 단면이라 씁쓰름하다.
고려대 김종건 영문학과 교수가 20년마다 세 번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에피소드를 더블린을 배경으로 1300여 페이지나 되는 소설로 만들었다. 김종건 교수는 1968년 첫 번째 번역본을 시작으로 39년에 걸쳐 20년마다 두 차례 더 번역본을 내놓았으며, 마지막 번역본은 무려 1300여 페이지에 달한다. 소설 ‘율리시스’는 아일랜드 작가인 조이스가 1922년에 출간한 소설로 호머의 ‘오디세이’를 모티브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을 배경으로 세 명의 주인공이 19시간 동안 겪는 에피소드를 18개의 장소와 소재로 만든 매우 특이하고, 난해한 소설이다. 채 하루가 되지 않은 시간을 25만 단어로 서술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하루는 생각하기에 매우 길고, 마음먹고 향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매년 6월 16일이 되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블룸즈데이’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갖는다. 팬들과 문학가들이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소설 ‘율리시스’를 기념하기 위해 주인공인 블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축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지식인 데덜러스, 신문광고 모집인 블룸과 그의 아내)의 모습을 흉내내고,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배경으로 낭독과 토론을 하며 하루를 만끽한다.
1950년 겨울, 이 땅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몇 달이 지나 미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근처까지 밀어 붙이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후퇴하던 미 해병 1사단은 혹독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당시 ‘라이프’의 종군기자가 꽁꽁 언 통조림을 포크로 파먹고 있던 한 해병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뭔가?"
그 해병은 며칠 밤을 지새워 행군한 탓에 충혈된 눈으로 기자를 쳐다보며 짧게 답했다.
"내일이오."
그렇다. 우리에게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오늘 하루를 잘 견디고 이겨내야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하루가 지나는 것을 아깝게만 생각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아까운 하루를 최고의 하루, 소중하고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