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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Nov 18. 2024

단 하루의 소중함에 대하여

최고의 하루를 지향하며

[블룸즈데이를 즐기는 더블린 시민들]


언젠가 당신의 인생에도 ‘오늘부터 너는 혼자 힘으로 양말도 못 신게 되리라’고 말하는 신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리는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다. - 존 버닝햄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




전설적인 미드 시리즈물 중 단 하루의 긴박하고 치열한 삶을 묘사한 [24시]가 있다. 2014년 미국 폭스사가 만든 12부작으로 영국 런던에서 벌어지는 잭 바우어의 활약상을 담은 이야기다. 국제적인 테러사건에 맞서는 테러방지단(CTU) 소속의 잭 바우어는 초인적인 능력과 사명감으로 테러단을 상대로 긴박한 하루를 쉴세없이 보낸다. 실제 방영이 되고 난 이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하루를 날 잡아 꼬박 시리즈 1편을 본 적이 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24시간을 함께 하였다. 그 당시 느낌으로는 단 하루의 삶이 이토록 길었단 말인가? 라고 탐복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는 나는 어떤 날은 감사할 꺼리가 없어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하루의 역설적인 단면이라 씁쓰름하다. 



고려대 김종건 영문학과 교수가 20년마다 세 번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에피소드를 더블린을 배경으로 1300여 페이지나 되는 소설로 만들었다. 김종건 교수는 1968년 첫 번째 번역본을 시작으로 39년에 걸쳐 20년마다 두 차례 더 번역본을 내놓았으며, 마지막 번역본은 무려 1300여 페이지에 달한다. 소설 ‘율리시스’는 아일랜드 작가인 조이스가 1922년에 출간한 소설로 호머의 ‘오디세이’를 모티브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을 배경으로 세 명의 주인공이 19시간 동안 겪는 에피소드를 18개의 장소와 소재로 만든 매우 특이하고, 난해한 소설이다. 채 하루가 되지 않은 시간을 25만 단어로 서술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하루는 생각하기에 매우 길고, 마음먹고 향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김종건 교수의 세 번째 번역본은 무려 1320여 쪽에 달한다]


매년 6월 16일이 되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블룸즈데이’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갖는다. 팬들과 문학가들이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소설 ‘율리시스’를 기념하기 위해 주인공인 블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축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지식인 데덜러스, 신문광고 모집인 블룸과 그의 아내)의 모습을 흉내내고,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배경으로 낭독과 토론을 하며 하루를 만끽한다. 


[6.25 당시 종군기자였던 버크 화이트]


1950년 겨울, 이 땅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몇 달이 지나 미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근처까지 밀어 붙이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후퇴하던 미 해병 1사단은 혹독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당시 ‘라이프’의 종군기자가 꽁꽁 언 통조림을 포크로 파먹고 있던 한 해병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뭔가?"

그 해병은 며칠 밤을 지새워 행군한 탓에 충혈된 눈으로 기자를 쳐다보며 짧게 답했다.

"내일이오."




그렇다. 우리에게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오늘 하루를 잘 견디고 이겨내야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하루가 지나는 것을 아깝게만 생각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아까운 하루를 최고의 하루, 소중하고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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