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후 후유증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나 2주 째다. 16년 만의 이사라 그런지 같은 평수의 비슷한 구조, 비슷한 연식의 아파트인데도, 짐 정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심지어 이사오기 전, 1톤 가량 버리고, 막 이사와서도 지속적으로 버리고 있음에도 아직도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난민 신세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흝어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그동안 어디에 숨어 살았는지? 아니, 왜 그들은 오래토록 방치된 체 외롭게 지내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숨어지냈던 것은 옷은 말할 것도 없고, 빛바랜 사진, 일반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테니스 라켓, 고장난 시계, 비데오 테잎, 카세트 테잎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들로 당시는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었던 것들로 이제는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옷은 행거를 사서 옷걸이를 이용해 하나하나 정리하며 다시 버릴 것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을 깨고, 보관해야 하는 계절 옷과 이불, 안방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다시 농을 들이기로 했고, 그동안 애지중지 보관만 했던 앨범은 중요한 사진만 따로 빼서 보관하고, 대부분의 사진은 추억으로 남기고 앨범과 함께 버려졌으며,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버렸다.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담았던 캠코더도 기록이 담겨있던 테입도 하나씩 버렸으며, 꼭 반드시 남겨야 할 그래서 언젠가는 추억을 소환하여 비디오테입을 돌려볼 날을 기약하며, 비디오플레이어와 함께 몇 개는 남겼다. 한 때 내 젊음의 운동 욕구를 채웠던 테니스 라켓은 바람빠진 볼과 함께 버려졌으며, 그밖에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소장품들이 과감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공간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사하며 느낀 거지만,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산다. 살다보면 쌓이는 물건만큼, 추억, 인연, 사람, 연민, 생각 등 흔적이 남겠지만, 대부분은 버려도 될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도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미래를 염려하거나 걱정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남겨놓는 것하고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눈 앞에 보이는 하루 하루의 삶, 현재 나에게 꼭 필요한 것,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귀해졌다.
중국 당나라 때 임제 스님은 '즉시현금(卽時現今) 갱무시절(更無時節)'이란 말을 남겼다. '지금이 곧 그때이고, 그 시절은 다시 없다;라는 뜻이다. 모든 게 찰나이고 모든 게 순간이다. 지금은 다시 없다. 가장 파괴적인 말은 '나중'이고, 가장 생산적인 말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