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의 옛스러움을 추억하며
가끔 찾는 성수는 여전히 젊은이들로 활기를 찾고 있었다. 외국인들과 우리 젊은 친구들이 적절하게 어울어져 붐비는 밤거리를 걷다 보니, 모처럼 기분도 업되고, 흥미로운 볼거리에 눈이 맑아짐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던 성수역 근처는 신도리코를 중심으로 공장이 밀집되어 있고, 구두 공방이 유명한 곳이다. 지금처럼 젊은 거리로 변화 된 계기는 놀랍게도 퇴출된 공장, 창고를 리모델링한 카페로 시작되었다. 공장이나 창고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며 독특하고 트레디한 카페를 만들고, 팝업스토어와 개성있는 식당을 만들었다. 2010년 초부터는 젊은 예술가,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가 유입되며 ‘힙’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해 젊은 세대의 창업과 거주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특한 문화공간이 집약된 상권 형성과 젊은이들이 몰려들며 대기업들의 야욕이 시작되었다. 명품 브랜드, 패션 플랫폼,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등 다양한 대기업이 팝업스토어를 열며, 비교적 저렴했던 임대료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젊은 예술가, 젊은 창업가들이 본래의 터전을 잃고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성수동이 젊은이의 성지가 된 배경에는 대형 빌딩이 적고 평지가 많아 산책과 탐방이 자유로운 점도 한 몫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조만간 거대 자본의 유입과 거대 빌딩이 하나 둘 들어서며 퇴색될 것이다.
이미 한 쪽에서는 거대 IT 기업인 ‘크래프톤’이 들어서고, 성수전략정비구역까지 신축 단지로 완성되면 고급주거와 대기업이 즐비한 ‘차세대 강남’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내가 성수역은 찾은 이유는 성수역 3번 출구에서 10여분 안 쪽으로 걸어들어가면 ‘뚝도시장’이라는 재래시장 안 쪽에 있는 작은 카페 ‘3개의 풍경’이라는 곳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모임이 있어서다. 뚝도시장은 나에게도 처음 가본 곳이다. 60년이 넘은 전통 재래시장이라는데, 낮에는 대부분 문을 닫고 저녁에만 야시장처럼 문을 열어 주로 먹는 장사만 한다는 것이다. 솟옷부터 온갖 잡다한 물건을 팔아온 ‘동네시장’이 성수역 근처가 핫플레이스로 변하면서, 먹거리 야시장으로 퇴색하며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뚝도시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연이 마주한 어느 카페 앞 ‘곰돌이’에서 그나마 흔들임없는 여유를 보았다. 비스듬이 앉아 있는 곰돌이의 모습에서 어지러운 세상과 상관없이 무념무상의 차분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낭만과 여유를 빼앗아 갔다. 적게 벌어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있음을 찬양했다. 풍족함은 없어도, 따뜻한 이웃이 있었고, 오고가는 정이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원하는 물건을 가까운 곳에서 쉽게 얻고, 향유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옛 것들을 하나 둘 잃어버리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화려하고 풍요로움을 거부할 수 없지만, 그런 화려함 이면에는 더 큰 외로움과 박탈감으로 우울함은 더 커지고 있다. 가진 것이 많고, 시간이 많다고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적어도, 시간에 쫓겨도, 마음은 여유롭고 한가한 때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화려함에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이런 / 영국의 낭만파 시인] 이 시는 바이런이 1817년 사순절 기간 동안 쓴 것으로, 당시 그는 축제 파티에 참석한 후 밤늦게 술에 취하고 지친 상태에서 이 시를 썼다. 바이런은 자신의 젊은 시절의 방황과 환락적인 생활을 돌아보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밤까지,
비록 마음은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하고,
달빛은 여전히 밝을지라도.
칼은 칼집을 닳게 하고,
영혼은 가슴을 닳게 하며,
심장은 숨을 쉬기 위해 멈추어야 하고,
사랑도 휴식을 가져야 하니.
비록 밤은 사랑을 위해 만들어졌고,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달빛 아래에서 헤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