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막내딸이 처음으로 편지를 쓰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글을 읽지 못하시니 글을 통해 막내딸의 마음을 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글을 통해 어머니께 막내딸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어머니가 매일 부뚜막에 물을 떠놓으시고 빌었던 소원처럼 어머니를 닮아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식들은
아무도 없으며 언니와 오빠들 모두 자신의 밥벌이를 하며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막내딸도 중년의 나이가 되고보니 비로소 어머니의 아픔, 상황, 고뇌등이
이해가 되며 제가 젊었을 때 어머니 힘든 상황에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서글픈 나이에 더욱 어릴적 어머니가 주셨던 사랑이 고파지는 것은 왜 일까요?
저의 생일날에 어머니의 체취, 향기와 사랑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 우리 막내딸은 성격이 차가울꼬" 하셨던 것 처럼 제 성격이 무슨 기념일,
생일날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 생일날에 저의 손을 미역국을 끓이고 있으니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어머니! 오늘이 막내딸 생일입니다. 생일날이 무색할 만큼 남편도, 딸아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생일날이니 미역국은 먹어야지"하면서 어제 사다놓은 브랜드 상품의 미역국봉지를 뜯어
냄비에 붓습니다. 저만의 생일날을 제가 차렸습니다. 하얀 쌀밥, 마트에서 파는 미역국, 김, 달래된장이
중년이 다 된 막내딸의 생일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며 떡과 쇠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이 차려진 생일상을 받았을 겁니다.
친구들은 자랑합니다. 자신의 생일날에 남편으로부터 명품백을 받았다느니, 대기업 취직한 아들이 백만원
수표를 주었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무심한 남편, 사춘기 딸아이를 둔 중년의 막내딸의 생일날에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새벽에 혼자 미역국을 끓여서 먹고 이는 나 자신을 보니
' 어머니도 나처럼 자신의 생일날에 미역국을 끓여먹었겠구나. 가족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생일을 챙겨
주지 않았던가. 어머니도 자신의 생일날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셨겠구나 . '라는 생각이 드니 어머니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 당신은 자신의 생일보다 자식들 생일날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자식들 생일 전날이면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준비하시고 쌀 시루떡을 만들기 위해 떡 시루도 깨끗이 닦아놓으셨지요.
언니와 오빠 생일날이면 귀한 소고기 미역국과 팥시루떡이 아침상으로 차려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님! 가족들 생일날에 제가 기다린 것은 어머니가 만든 팥시루떡이나 소고기 미역국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다렸던 것은 찜통과 떡시루 사이에 반죽으로 꼼꼼히 막아놓았던 밀떡(저는 그렇겐 불렀습니다.)이었습니다. 떡시루와 찜기 사이에 김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붙여놓은 밀가루 반죽이 찜통에서 나온 열기로 구워진 밀떡은 딱딱하고 구수하면서 혀끝에 녹아 막내딸에게는 최애의 맛이었습니다.
제가 떡시루에 붙여진 바삭하게 구워진 밀떡을 떼어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항상 그러셨죠.
" 맛도 없는 것을 왜 먹고 있니? 떡 먹어보거라!" 하시면서 자를 타박하였지요. 하지만 어머니 !
저는 떡시루와 찜기 사이의 열기로 인해 만들어진 밀떡이 마치 어머니의 사랑으로 빚어진 밀떡같았습니다.
가족들 생일 전 날부터 떡시루를 씻으시고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오시고 떡시루에 층층히 쌀가루,
팥, 쌀가루를 쌓으시는 어머니의 정성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떡이 만들어지기까지 부뚜막에서 두 손을 감싸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두 손모아 빌곤 하셨지요. 어머니께서는 밀가루 반죽을 하시면서 떡이 잘 만들어져야 생일을 맞은 가족이
무탈할거라면서 정성을 들여 밀가룰 반죽을 하시고 떡시루와 찜기에 밀가루 반죽을 정성스럽게 메꾸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밀떡이 그렇게나 맛있었나 봅니다.
가족들 생일날 새벽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새벽에 팥시루떡을 만드는 엄마를 둔 나는 행복한 아이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의 마음에 대해 이제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중년이 된 막내딸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팥시루떡을 만들어 주실 어머니는 이제 제 옆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십이 넘은 막내딸이 혼자서 미역국을 끓여먹는 모습을 차라리 어머님이 보지 못하는 것이
낫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제 곁에 떠나신지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저도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가 겪었을 인생의 아픔, 상처, 고난 등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뚜막에서 매일 아침 막내딸을 위한 기도덕분에 막내딸 잘 살아가고 있고 인생의 어려움도 극복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품에 안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어머니, 오늘 저의 생일날 혼자 미역국을 끓여 먹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몹시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팥시루에 붙여진 딱딱하고 구수한 밀떡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또 편지 쓰겠습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