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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이 Jun 20. 2024

삶이 산산조각 나본 적 있나요?

5일간의 마음챙김 집중수련 과정 중, 선생님께서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읽어주시고 이렇게 물으셨다. "이 중에서 삶이 산산조각 나듯 깨어져 본 적 있으신 분 있나요?" 조용히 듣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둘씩 손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다. 어떤 이유로 삶이 산산조각 났는지, 얼마나 삶이 깨어졌는지는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살면서 삶이 조각나는 듯한 고통을 경험한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는 이렇다.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이 시를 읽어주신 날은 삶의 고통을 주제로 이야기하셨다. 명상은 결국 고통에 가닿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수용하고 고통과 함께,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수련생들끼리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묵언수행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수련기간 내내 말을 하지 않고 각자의 수련에만 집중하며 보냈다. 처음으로 마주 보고 앉아 상대방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이드에 맞추어 마음 깊은 곳의 자비심을 보내는 연습을 해보았다.


지금 내 눈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 그리고 이 사람 또한 삶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깨어지며 살아왔는가. 고통의 순간도 있었고 환희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내 안의 자비와 연민심을 발휘해 상대방을 향해 뜨거운 위로를 보내보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 앞에 앉은 이 분의 이름도, 나이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저 살아내느라 고생하셨겠다, 삶의 긴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통, 또 기쁨과 환희를 경험했을지 그런 것들이 어렴풋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을 담아 응원을 보내드렸다.


사진: Unsplash의 Marcos Paulo Prado


명상에서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삶의 일부이며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는 보편성에 대해 말한다. 머리로는 당연한 이야기지 하지만 살다 보면 내 고통에만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겪는 어려움, 내가 처한 상황, 내가 당한 슬픔들만 보이다가 막상 내 눈앞에 있는 이 분 또한 그런 고통을 지나왔다는 것을 존재로써 느끼는 순간, 그제야 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 시와 함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다음 반전이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절대 깨어지지 않는 빛이 있다고. 우리는 내 삶이 어딘가 망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각자 이미 존재하는 고유한 빛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학업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 온전한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나이 들고 병들었다고 해서, 지금 당장 고통 중에 있다고 해서 그 빛이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 안에 사라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온전한 빛이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고 하셨다.


산산조각. 삶이 깨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새로운 조각을 얻을 수 있고 또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깨어지지 않는 빛이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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