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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이 Jun 27. 2024

스스로에게 기쁨을 허용하기

지난주 명상 수업의 과제는 내 삶에 자양분이 되는 것과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기록하는 것이었다. 자양분이 되는 것은 생산성을 떠나 순수한 기쁨을 주는 것들, 예를 들어 식물에 물 주기, 산책하기, 반려동물과 놀기 등이 될 수 있다. 나를 소진시키는 것에는 그 행위를 하면 할수록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으로 요즘 많이 하는 것은 생각 없이 몇 시간째 릴스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나를 기분 좋게 하고 고양시키는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를 좀 더 생각하면서 발견한 것들이 있다.


삶을 지탱해 주는 무용한 것들

내 삶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남편과 함께하는 밤 산책,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불필요한 오해나 꾸밈없이 하는 솔직한 대화, 차를 내리고 책을 읽는 시간, 고요하게 앉아 명상하는 시간이다. 이런 것들은 그 쓸모를 굳이 찾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내 마음을 풍성하게 채운다. 누군가가 들었을 때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빠르게 달리라고 등 떠미는 세상에서 가장 나답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자 편안하게 이완하는 순간이다. 결국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이다. 무용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삶에 이토록 계산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다.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들

그런데 삶에 의무와 책임이 많아지면 이런 것들은 가장 먼저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해야 할 일들이 앞서면 제일 먼저 잠을 줄이고 나를 위한 식사시간은 사치가 돼버린다. 끼니를 정성스레 준비하고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먹기가 된다. 어느새 식물은 말라가고 집안 정리가 안되기 시작한다. 친구나 가족과의 약속도 줄일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지 묻는 질문 앞에 아니오로 분류된 것들은 가장 뒤로 밀려나는 수순이다. 내 삶의 자양분이자 활력이 되는 것들이 필요와 쓸모라는 커다란 벽 앞에서 무력하게 내동댕이 쳐진다.


사진: Unsplash의 Alex Alvarez


기쁘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

나를 기쁘게 해 주지만 '열심히, 생산적인'이라는 말들이 튀어 오를 때면 왠지 모르게 말끔하고 개운한 기분으로만 누리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다. 때로는 찝찝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오랫동안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오로지 지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구분해 오며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입시에, 취업에, 보이는 성과에 밀려서 나를 볶아치는데만 익숙해있다 보면 순수한 기쁨을 찾아 마음껏 누리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기쁨을 허용하기

집중수련 명상을 마치는 마지막 날, 선생님께서는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당연히 명상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예상하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삶에서 즐겁고 기쁜 일을 많이 만들라고,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역시나 마음챙김은 자리 잡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서 수행하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기쁨을 허용하고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내는 것임을 배웠다.


언젠가 자이언티의 인터뷰 내용 중, 좋은 곡을 써내는 비결이 '스스로를 기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조금 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말을 천천히 헤아리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나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허용해 주고 기분 좋은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친절한 일이 될 것이다. 또 그런 좋음의 상태에서 창의력도 생산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경쾌하게, 어떠한 검열도 없이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을 찾아 마음껏 누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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