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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기자생활 Jun 20. 2021

미안해, 내가 엄마를 잘못 키웠나 봐

난 요즘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매번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싫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남편과 자식에게 100% 헌신하는 엄마를 가졌다는 건 나한테 있어선 축복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축복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굳이 축복을 받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헌신이나 희생에서 오는 축복을 바라는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시작된 아버지 사업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나는 작년부터 직장을 다니고 있고, 3살 밑 동생도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반백살이 지난 엄마는 아버지 사업을 도와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다. 아버지 일이 신체적으로 상당히 고된 일이기에 엄마가 집에 오면 쉬길 바랐다. 기자 생활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내가 집안일과 요리를 도맡아서 하려고 한 이유도 그래서다. 엄마가 너무 가족에게 희생하는 것 같아서. 엄마가 아닌 우리 김 여사로서의 삶이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그렇지. 엄마가 해야 되는데..."


한 2주 전인가. 엄마는 일을 나가셨고, 난 쉬는 날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싱크대 앞으로 왔다. "아들, 뭐 도와주면 돼?"


솔직히 말해 엄마한테 상냥하고, 싹싹한 아들은 아니기에 "됐어, 내가 할 테니까. 먼저 씻고 와"라고 쌀쌀맞게 말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우리 김 여사는 이번에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따가 설거지 쌓이면 힘들어. 지금 해놔야지"


난 엄마의 그런 점이 싫었다. 그냥 내려놔도 되는데, 남들은 자식들이 집안일을 안 도와줘서 싸운다는데. 난 음식하면서도 엄마한테 잔소리를 날리고 있었다. 엄마는 무조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나한테 맡겨서 미안한 것처럼 행동했다.


또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다. "내가 한다니까. 씻고 밥 먹을 준비나 해"

그러고 돌아온 엄마의 말이...솔직히 너무 싫었다.


"미안해서 그렇지. 엄마가 해야 되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유는 아리송하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엄마다운 대답이 돌아와서 그런지 혹은  정말로 나한테 미안함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 순간 하나는 확실했다. 난 그 대답이 정말로 싫었다.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꿇리지 않는다지만 아줌마들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못 따라와 주기 마련이고, 예전 같으면 힘들지 않은 일에 땀을 흘리게 된다. 우리 엄마도 그렇다. '손목이 아프다', '잠을 깊게 못 잔다'는 말이 요즘 부쩍 늘었다.


그래서 엄마의 미안함이 더 싫었다. 모든 집안일을 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효자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어릴 적에 나와 내 동생은 집안일에 신경 쓰는 자식이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식사 시간이 되면 매번 한 사람은 주방에 나가 엄마를 도왔다. 때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일을 분배해 집안일을 해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자신의 삶을 살아도 될 텐데 엄마는 또 가족이 우선이었다.


"엄마가 해놔야 편하게 먹지"


최근에도 엄마한테 한 소리를 했다. 한 소리를 하게 된 이유는 지난번과 비슷했다. 내가 제주도 출장을 가게 됐고, 여행을 가고 싶다던 엄마가 제주도를 따라오기로 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출발하기 이틀 전 엄마의 일과는 여행 준비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없는 날 동안 아빠와 동생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주방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짐 싸지 않고 뭐하고 있는지 묻자 엄마는 가기 전에 준비를 해놔야 아빠와 동생이 밥을 챙겨 먹을 거라고 그랬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돈이 없는 집안도 아니고, 엄마 없는 동안 아빠와 동생이 아무것도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다. 엄마가 없을 때 밥을 해먹기 싫다면 라면이라도 알아서 끓여 먹을 텐데 굳이 또 음식을 해놨다.


"아빠랑 얘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알아서 해먹겠지" 또 퉁명스럽게 나간 내 말처럼 엄마의 대답은 또 엄마다웠다.


"엄마가 해놔야 편하게 먹지"


사실 엄마랑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이제는 좀 내려놔도 된다고. 엄마가 아닌 김 여사의 인생을 살라고. 엄마는 거짓말쟁이였다. 매번 알겠다는 대답은 돌아오지만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김 여사의 삶이 아닌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럴수록 날 자책하게 된다.


'엄마, 미안해. 내가 엄마를 잘못 키웠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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