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 기자생활 May 22. 2023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고정관념


나를 타인에게 소개할 때 ‘꼭’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전 앞뒤가 다르지 않아요.’     


진심이다. 그만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의견 표출이 확실하다.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생명과 죽음처럼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 좋다. 그래서 그런지 앞에서의 행동과 뒤에서의 행동이 다른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 사람을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대부분 뒤에서의 행동이 그 사람의 본질처럼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 참 그렇다. 혹은 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볼 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게 된다. A가 가진 부정적인 면모를 통해서 나와 A의 관계를 결정하는 순간이 많다.     

 

이런 나만의 특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남에게 하는 걸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는 남도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서. 극도로 나 위주의 사고방식이지만...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성격 때문인지 주변 인간관계도 그렇게 정리되는 것 같다. 내가 가까이하기 싫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이 나한테 호의를 보여도 말이다.      


이런 모습이 ‘나’ 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왜 그래?’라고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이게 편했다. 바꾸기 싫었다.      


그런데 나다운 게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받은 뒤로...     


예를 들어 내가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연락이 오는 상사의 지시가 그렇게 싫었다. 그런 연락은 ‘나’를 방해하는 요소였으니까.      


한심하게도(?) 지금은 근무 시간이 아닐 때 팀원에게 부득이하게 연락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나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하게 된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3교대 체제인 회사의 특성상 모두의 근무시간이 상이하다.

      

처음에는 팀장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내 일상의 80% 이상을 일에 할당했다. 팀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서 연락을 넣을 수도 있었다. 그러자 부작용이 생겼다. 팀장이 아닌 내 일상이 너무 망가졌다. 인생의 포커스가 ‘일’에 맞춰졌다.  

    

내 인생의 포커스는 절대로 일이 아니다. 일을 잘하고 싶고, 좋은 팀장이 되고 싶고, 회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위해, 내 사람을 위해 내 인생을 살고 싶다.


결국 내가 일하는 시간에 일을 하다 보니까 근무 시간이 아닌 팀원들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나’ 다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다움이 흔들릴 때마다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연락을 할까? 말까? 단톡에 톡을 남겨? 남기지 말까? 대부분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지만 그때마다 왠지 모를 사소한 죄책감...     


‘팀을 위해, 회사를 위해’라는 변명으로 합리화를 해보지만 어떻게 해야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 답게 살고 싶은 ‘나’와 충돌하고 있는 ‘팀장’으로서의 ‘나’...28살 다시 한번 인생이 나한테 미션을 던져줬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버리니 새로운 내가 찾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