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늘 꾸중하는 처지에 있다 보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꾸중은 사실 약과 같다. 잘 하면 그 사람에게 효과가 크지만 잘못하면 역효과를 내게 되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꾸중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아이에게 꾸중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일이다. 오히려 엇나갈 경우가 더 많다. 요사이, 특히 아이들의 경우가 가정에서부터 귀하게 자라서 자신의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고 듣기 싫은 소리는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화를 내며 대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꾸중의 역효과는 듣는 사람 탓도 있지만 하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너무 흥분하여 몰아치거나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 피곤하게 만들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다고 해도 반발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꾸중은 가급적 부드러운 말씨로 간단하게 타이르거나 부탁하는 어조로 하는 것이 좋다. 꾸중에도 일종의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꾸중을 칭찬이나 격려처럼 들리게 만들면 최고로 좋다. 먼저 잘못 대신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뒤에 잘못은 간단하게 지적한 후 격려하는 말로 끝맺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각한 학생에게 “너처럼 부지런한 학생이 웬일이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거니? 그래도 지각은 곤란해,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다니도록 해라, 그럼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그 학생이 미안해 할 것이다. 만약 숙제를 맘에 안들게 해 온 학생이 있다면 “아이디어가 참신하네. 그런데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전체적인 맥락이 살아나고 이야기가 더 재미 있을텐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꾸중 뒤에 칭찬과 격려가 들어가는 이런 대화법을 ‘샌드위치 대화법’이라고 하는데 효과는 만점이다.
칭찬의 힘은 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칭찬은 사람에게 힘을 준다. 칭찬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칭찬이다. 한 번은 등교하는 학생에게 “오늘 따라 정말 멋진데, 요즘 점점 더 멋있어지는데...” 라고 칭찬의 말을 해 보았다. 정말 기분이 좋은지 어깨를 으쓱하며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지나간다. 매사에 칭찬을 받고 자란 학생과 꾸중만을 받고 자란 학생의 학업성취보고서를 보면 칭찬을 받고 자란 사람의 학업성취가 훨씬 높았다. 칭찬은 단지 아이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에게도 역시 칭찬은 명약이다. 칭찬이 위기에 처한 조직을 지켜낸 사례에서 보듯 칭찬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다.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칭찬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바꾼다. 조직에서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변화는 놀랍다. 서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조직의 발전으로 이루어지고 돈독한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칭찬처럼 기적을 만드는 말도 없다. 조지오스틴은 <잘되는 나>에서 ‘단순한 실수는 최대한 보듬어주고 잘못된 지적 1가지에 칭찬 5가지를 말해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모든 칭찬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칭찬, 과장되거나 계산된 칭찬, 누가 봐도 조롱으로 들리는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된다.
칭찬이야말로 진정성이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