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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Jun 09. 2020

<신약의 탄생> 1  

인류의 삶을 바꿀 신약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류의 삶을 바꿀 신약은 어디쯤 와 있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신약의 탄생>은 현대 과학의 정수, 자연과학의 종합예술로 불리는 신약개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오랜동안 이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해 온 윤태진 박사가 신약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자 신약에 대해 알기 쉽게 쓴 글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도 읽다보면 의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질병과 치료에 대한 지식은 물론 더 건강한 삶을 위해 취해야 할 생활습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 특히 난치의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약개발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사실 큰 병에 걸려 본 경험이 없는 경우 너무나 쉽게 약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치료 약물을 개발하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디고 길다. 신약의 개발과정은 크게 5단계로 나뉘는데, 그보다 이전에 기초 연구가 있어야 한다. 쉽게 이해하자면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들이 바로 신약개발을 위한 획기적인 기초연구를 남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신약연구의 0단계, 다시말해 새로운 약물 표적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과학적으로 규명, 또는 증명함으로써 직접적인 신약개발의 근거를 제공하는 단계가 기초연구라 할 수 있다.     


기초 연구가 시작된 후 약이 시판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0년이 넘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연구에 매진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보통 기본연구에서 임상3상을 거쳐 시판에 성공하는 비율은 채 10%를 넘지 않는다. 그러니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면역항암제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그에 대한 연구는 20년전인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면역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면역계와 면역세포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되었고, 그 학문적 성과가 누적되면서 약물표적이 선별되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항체’라는 새로운 약물 접근방식이 진행되었다. 이후 짧게는 17년, 길게는 24년의 연구 및 임상실험을 거쳐 이 치료법이 FDA의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약이 우리 몸을 병으로부터 낫게 하는 과정부터 알아보자. 약물에는 합성의약품 이외에도 항체, 단백질 펩타이드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는 합성의약품, 즉 아스피린과 같은 소분자화합물이다. 이러한 약물은 인체로 들어가 특정 단백질의 특정한 위치에 결합하면서 약효를 내게 된다. 가령 어떤 단백질은 그것을 기능케하는 활성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 부위에 결합하여 해당 단백질을 활성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화합물을 찾는다면 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다. 아스피린은 우리 몸에서 통증이나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효과를 가지는데, 아스피린은 프로스타글란딘을 생성하는데 필요한 효소단백질인 사이클로옥시게나아제의 기능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약물이 작동하는 방식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병이 나타나는 증상은 동일하더라도 그 원인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질병치료를 위해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가령 위염이나 위궤양의 경우는 위의 점막이 손상되어 염증이 일어나는 것인데, 수크랄페이트란 약물은 위 점막의 자극을 줄이도록 고안되었고, 데프레논이란 약물은 위 점막을 보호하고 점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파모티딘과 같은 약은 아예 위에서 위산이 분비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식을 취한다. 이처럼 동일한 질병에 대해서도 새로운 치료법을 찾고자 하는데 이는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도 있지만 기존 약물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함도 있다.     


사람의 단백질 중 질병과 관련하여 표적으로 지적된 것은 약 400종, 비율로는 약 13%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87%는 아직 접근 약물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존의 소분자화학물 약물의 작용방식으로 단백질의 기능을 모두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단백질은 약물이 잘 결합할 수 있는 ‘소수성 포켓’ 구조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특정 효소의 활성부위에 보조인자가 너무 강하게 결합하고 있는 경우에도 소분자화합물이 그 결합을 깨기 어렵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질의 원인으로 밝혀진 ‘타우단백질 엉킴’의 경우 약물을 통해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거나 단백질의 엉김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기존의 약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약물 접근 방식이 필요해졌다.     


그 중 하나가 2017년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암치료 신약 후보물질 중 하나인 ‘프로탁 (PROTACs)’이다. 기존의 약물이 암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특정 부위와 결합하여 기능을 억제하는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프로탁’은 아예 그 단백질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새로운 방식이다. 아직 FDA의 승인을 받은 실제 약품은 없지만 많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약물접근방식이다. 기존의 소분자화합물 약물은 표적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특정부분에 결합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는 반면 ‘프로탁’은 표적단백질 또는 단백질 엉김과 같은 경우에도 이를 분해할 수 있어서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방법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면역항암제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중의 하나가 대장염이다. 대장염은 면역항암제 투여시 약 40%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현재 치료가이드라인은 면역항암제 투여 과정에서 대장염이 발생하면 치료를 중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대처로 조금은 특이한 치료법이 제시되었는데 바로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하는 것이다. 텍사스대학교 MD앤더슨 암센터의 잉흥 왕 연구팀은 대장염 표준치료제인 인플릭시맙과 베돌리주맙에 내성을 보이는 면역항암치료 환자 2명에게 정상인에게서 체취한 분변을 화학처리 후 걸러서 환자에게 주입했더니 1~2회 주입 후 대장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를 얻었다. 환자 2명 모두 분변 이식 후 정상인과 비슷한 장내 미생물의 분포를 보였으며, 이와 더불어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미생물의 군집이 새롭게 형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미생물 분포의 변화로 인해 면역을 억제시키는 조절T세포가 증가하여 면역반응에 의한 염증과 궤양을 감소시킨 것이다.     


이처럼 장내 미생물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장내미생물 연구가 이제는 신약연구개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장내에는 약 100조 가까운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세포수가 대략 37조개인 점은 감안하면 우리 몸의 세포보다 세 배의 미생물이 우리 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미생물들은 유전자보다 150배나 많은 수백만 개의 유전자를 발현하여 장에서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대사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사람과 공생하고, 사람의 면역기능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한다. 이런 까닭에 장내 미생물을 과학자들은 ‘제2의 장기’, 또는 ‘두번째 유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일어나면 장내 세균이 발현하는 단백질의 구성도 변화해 우리 몸의 신진대사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장내 미생물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중 하나가 노화와 관계된 것이다. 막스플랑크 노화생물학연구소의 다리오 발렌사노 연구팀은 나이 먹은 물고기에게 어린 물고기의 변에 있는 미생물을 먹였을 때 더 오랜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어린물고기의 장내에는 박테로이데테스, 페르미구테스, 방선균류 등 다양한 미생물이 상당한 양으로 농축되어 있지만 나이 든 물고기의 장내에는 프로테오 박테리아라는 특정 미생물이 다수여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물고기의 신진대사와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병원성 미생물의 군집이 주로 많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음이 밝혀졌다. 면역세포의 80%가 장내에 분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내에 해로운 미생물이 유익한 미생물보다 많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미생물 연구는 인체 특정 기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특징과 숙주-미생물 사이의 상호작용, 나아가 미생물과 인체 특정 기관과의 상호작용까지 그 연구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런 대표적인 예로 장축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생물과 신경발달 장애, 퇴행성 뇌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최근에는 소화기 질환 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 지방간염, 대사증후군, 나아가 고협이나 내분비 이상 등 대사질환, 염증성 장질환, 류마티스성 관절염, 셀리악병 등 면역질환, 그리고 뇌질환까지 장내 세균 구성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 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장내 미생물이 질병과 건강, 나아가 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신체에 관여하는 정도가 깊고도 넓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장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치료제가 면역항암제의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장내 미생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앞으로 신약 개발에 있어서 미생물 연구는 거의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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