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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May 06. 2020

일상이라는 삶의 예술

일상은 우리에게 마치 당연하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듯 일상이 무너지거나 위협당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가 얼마나 일상에 밀착되어 있고, 또 필요한 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상은 습관이라는 벽돌로 쌓은 영혼의 안식처다. 오늘날 같이 위협적인 세상에서 집콕은 새로운 삶의 일부로 자리잡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은 타율의 제국이다. 집안 살림살이는 온갖 우연적 배치에 지배되며 자율과는 아주 먼 나라다. 그런 까닭에 자율에 따른 여가라도 확보하려면 여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소설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스크린과 소설 속 사람들은 그런 일상에서 자유롭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상의 타율적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집안 일을 제 때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안 일 따위는 단지 거추장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하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은 엄연히 존재한다. 휴일 내가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잠시 후 차를 마시며 TV드라마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내가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만 한다. 차를 마시거나 인터넷 서핑을 할 때는 그 일이 역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어야 한다. 


어떤 일을 귀찮거나 괴로운 일로 느낀다면 그건 그 일이 다른 중요한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작 그 중요한 일 다음에는 또 다른 일이 대기하고 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하거나 내일 출근해서 할 일을 걱정하게 된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는 따지고 보면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를 원한다는 증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사실 작은 문제들이 쌓여있는 큰 더미에 불과할 뿐이다. 더미 속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면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버나드 글라스먼이 사찰 공양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선, 삶의 요리법>에는 다음 구절이 나온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대체로 우리는 성급하게 군다. 무언가를 그냥, 무엇이라도 당장에 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선 요리사는 주방에 어제 쓴 더러운 그릇이 쌓여 있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쓸 만한 재료가 무언지 확인하려면 먼저 질서부터 갖추어야 한다. 즉 선불교의 관점에서는 모든 변화와 모든 일이 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깨끗이 하는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질서와 청소...그러니까 우리가 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먼저 주방을 깨끗이 해야 하는 것이다.      


삶도 똑같다.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근심을 덜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 머릿속에는 항상 삶의 커다란 문제들이 쌓여 있다. 직장 일과 관련 있거나 인생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를 짓누르는 무겁고 큰 문제들이다. 그렇지만 주방에 쌓인 그릇을 치우지 않으면 요리를 할 수 없는 법이다.    


진정한 삶의 예술은 자신의 코 앞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자신만만한 사람은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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