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질병이 극복되고 있고 따라서 인간의 수명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기간 중 노령으로 지내야하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나이에 따른 노화 현상은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시간이 지나면 늙고 쇠약해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노화를 질병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래야 치료법도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인성 치매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그것을 질병으로 인식해 예방과 치료법이 마련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치매를 질병으로 인식하면서 그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노화현상을 자연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노화가 질병이냐 아니냐보다는 노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예방할 수 있는지가 우리에게는 더 관심거리다. 오랜 연구의 결과 노화의 원인은 크게 아홉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먼저 DNA 수준에서 일어나는 1)유전체의 불안전성 2)텔로미어의 감소 3)후성 유전학적 변형 4)단백질 균형의 상실, 그리고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5)영양소 감수성 감소 6)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 7)세포노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8)줄기세포 고갈 9)세포간의 소통변화가 있다.
하지만 노화는 복잡한 현상으로 그 양상을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홉 가지 특징을 다 살펴보아야 노화의 원인, 치료법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가능하다. 노화는 DNA에서부터 시작된다. 노화현상을 세포수준에서 살펴보면 손상된 세포들이 쉽게 제거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활동을 계속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화의 일반적인 원인은 ‘시간에 따른 세포손상의 축적’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세포손상은 암을 생성하는 특정세포에게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암과 노화는 ‘세포손상의 축적’이라는 동일 과정의 두 가지 다른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암과 노화는 정반대 현상이지만 원인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암과 노화는 그 연구내용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즉 노화연구는 암 연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세포의 정상활동 중에는 세포분열도 포함된다. 하나의 세포가 자기분열하면서 두 개의 세포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포분열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유전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어 비정상적인 세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DNA의 어떤 변형이 이루어지면 이로 인해 세포손상이 이루어진다. 특히 1)유전체의 불안전성 2)텔로미어의 감소 3)후생유전학적 변화가 DNA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 요인을 DNA 수준에서 일어나는 노화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백질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DNA를 복제하고 이를 수리하는 일은 모두 단백질이 담당한다. 이런 까닭에 단백질의 균형 상실 또한 세포 손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100만번에 한 번꼴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이 돌연변이는 양날의 칼이다. 좋은 면으로 작동하면 유전자 풀의 다양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나쁘게 작동하면 암이나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정상범위 비율보다 높게 나타날 때 이를 ‘유전체(게놈)의 불안전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불안전성은 자외선이나 방사선, 화학반응 등 각종 자극에 의해 부분적으로 비정상적인 DNA복제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은 우리 인체의 DNA복구 메커니즘 작동에 의해 그 손상을 복구할 수 있지만 지나친 자극에 의해 과도한 변화가 생기면 비정상적인 부분을 보유한 채 DNA복제가 이루어지고 이는 곧 암이나 노화의 원인이 된다.
우리 세포는 DNA가 손상되면 이를 복구하는 능력을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이 능력이 서서히 줄어든다. 이를 유지시킬 수 있는 처방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DNA손상에 의한 노화는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싱클레어 연구팀이 2017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한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데 관여한다고 알려진 단백질 중에 SIRT1과 PARP1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그런데 이런 DNA복구 조절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NAD+라는 대사 물질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PARP1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연구팀은 NAD+가 DNA 복구 조절 단백질 사이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규명했다. 손상된 DNA 복구 단백질인 PARP1은 DNA와 결합할 수 있어야 DNA복구 메카니즘을 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세포 내 NAD+가 줄어들면 DBC1이라는 단백질이 PARP1 단백질에 결합함으로써 PARP1이 DNA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한다. 반대로 NAD+ 농도가 높아지면 PARP1 대신 NAD+가 DBC1단백질과 결합함으로써 PARP1은 DNA와 결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연구 결과는 노령에 의한 DNA 손상 뿐 아니라 방사선(전자기파)으로 DNA가 손상되었을 때도 NAD+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 DNA를 복구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문의 결과가 미 우주항공국(NASA)의 화성탐사 계획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면 우주 비행사는 비행기간이 짧더라도 우주에 존재하는 대량의 전자기파에 노출되기 때문에 우주비행사의 몸에서는 노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근육 약화, 기억 상실과 같은 증상이 일어난다. 이 문제는 화성탐사계획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지구 자기장에서 벗어난 우주인들은 우주 전자기파에 의해 DNA손상을 입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노화는 물론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 비행사는 세포 중 5%는 사멸하고 그로 인해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할 확률은 100%에 가깝다. 하지만 이 논문 결과가 제시하는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다면 화성탐사 임무 수행 중 발생하는 우주방사선 피폭의 영향을 줄이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 연구결과는 2016 NASA 기술공모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발견은 암 예방, 나아가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의한 DNA손상, 심지어 노화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치료법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노화와 관련해 또 하나의 원인은 ‘텔로미어’의 감소다. 텔로미어는 이름 그대로 염색체의 말단에 위치한 염기서열로 유전정보를 가지지 않고 단순히 염색체보호 기능을 담당한다. 신발끈으로 보면 끝부분이 단단한 비닐로 코팅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텔로미어 또한 이처럼 DNA의 끝에 위치하면서 DNA 묶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너데 시간이 흐름에 따리 체세포의 세포분열 과정이 반복되면 이 텔로미어의 길이가 점차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텔로미아는 일반적인 DNA복제 효소로는 복제가 되지 않으며 텔로머라아제라는 특수한 DNA복제효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체세포들은 이 텔로머라아제를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텔로미어 서열에서는 지속적인 손실이 일어나고, 그 손실들은 계속 누적된다. 그로 인해 DNA복제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궁극적으로 텔로미어가 손실된 세포는 세포분열을 멈추고 사멸한다. 이 때문에 텔로미어의 길이는 세포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자의 불안정성은 DNA 손상이나 노화에 불규칙적으로 작용하는데 비해, 텔로미어의 감소는 노화에 매우 직접적이며 민감하게 작용한다. 이를 증명하는 예가 바로 복제양 둘이다. 세계최초로 체세포 복제방식으로 탄생한 둘리는 양의 평균 수명인 11~12년의 절반인 6.5년 밖에 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둘이에게 체세포 DNA를 전달한 양의 나이가 6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복제된 체세포는 이미 6살의 노화가 진행되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체세포는 텔로머라아제를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제양 돌리의 복제에 이용된 체세포 DNA의 텔로미어는 이미 6살만큼 짧아져 있어서 둘리는 6.5년 밖에 살지 못했을 수 있다.
동일한 유전적 정보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자라면서 외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같은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외부환경, 예를 들어 사는 곳이나 식습관, 운동, 또는 스트레스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특정 유전정보가 재생산 되거나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를 후성유전학적 변화라고 하는데 잘 알려져 있는 진 현상이 DNA 메틸화다. DNA 메틸화에 변형이 생기면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기도 하고, 그 변형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음식이나 약물을 통해 유입된 유기화합물에 의해 히스톤 단백질 변형이 일어나면, 이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패턴이 변형될 수 있다. 가령 임신초기에 감기약을 먹는다든지 과도한 흡연을 하거나 중금속이 유입되면 태아의 신체에 영향을 줄 주 있다. 이러한 후성유전학적 변형으로 인해 DNA는 동일한 쌍둥이도 각 유전자들의 발현 여부와 발현정도의 차이에 따라 다른 표현형을 가질 수 있으며, 반대로 다른 유전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도 같은 생활환경에서 오랫동안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면(가령 부부의 경우) 그들의 유전자는 비슷한 패턴으로 발현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서로 닮아가게 된다. 만약 이런 과정이 대단히 비정상적인 유전자 발현 또는 미발현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단순히 닮음이나 차이를 벗어나 심각한 세포의 변형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 변형이 바로 세포노화의 시작일 수 있다.
세포가 정상적인 범위에서 그 활동을 지속하려면 각 단백질은 세포 내에서 일정한 수준의 농도를 유지함으로써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단백질들은 열에 의한 변형이나 스트레스, 혹은 활성산소의 영향으로 구조가 변형되기도 하고, 때로는 단백질 구조유지를 위한 접힘이 풀어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세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단백질의 농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샤페론이라는 단백질은 세포에서 단백질이 정상적인 구조와 형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불안정한 단백질들이 생기면 그 구조가 다시 안정화되도록 샤페론이 결합하여 부축해주고, 안정적인 구조의 접힘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단백질이 잘못 만들어진 경우에는 이를 신속히 분해하여 새로운 단백질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와 꽌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 바로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단백질 접힘에 문제가 있으면 유비퀴틴이라는 일종의 분리수거 스티커를 붙이고 이 스티거를 인식하는 쓰레기 분쇄함(프로테아좀)을 통해서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을 분쇄한 후, 이 재료들을 가지고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을 처리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자가포식’이 있다. 유비퀴틴에 의한 분쇄법이 단백질 하나하나를 선별하여 진행하는 과정이라면, 자가포식은 좀 더 적극적으로 불필요한 세포 안의 소기관이나 손상된 세포들을 리소좀을 통해 분쇄해서 이후 재활용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집안대청소’에 해당한다. 이 자가포식은 노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가포식에 문제가 생기면 암, 심장병, 퇴행성 뇌질환 같은 노화 관련 질병의 발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면 자가포식의 정도가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정상적인 구조와 형태를 가진 단백질의 농도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는데 만약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단백질들의 역할에 공백이 생겨 세포 손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단백질의 항상성 유지와 관련하여 2017년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논문에 의하면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알려진 ATP가 단백질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ATP는 소수성 분자를 용해시키는 ‘하이드로트로프’의 역할도 직접 수행함으로써 세포의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다. 세포내에서 ATP의 농도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수많은 수용성 단백질의 응집을 저해하고 이미 응집된 단백질들을 용해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몸은 단백질의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세포손상을 막는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