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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Apr 20. 2023

비 오는 날의 기억

23.4.20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괜스레 마음이 심란해지려는데 라디오에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남부지방에서 사연이 올라오는데 어제까지 비가 오다 오늘은 너무 화창해서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입장 바꾸어 보라 한다. 어제 서울의 날씨가 여느 날보다도 맑고 푸르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날씨가 변한다고 나의 일상이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사실 심란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일상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일상의 평범함이야말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사소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걷는 것이 나의 일상 중 하나인데 오늘은 비가 오는 관계로 우산을 쓰고 걸었다. 비 젖은 길을 걷는 기분은 좀 더 색다른데 어린 날의 기억을 소환하여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6-70년대에 걸쳐 있는데 내가 살던 곳은 궁벽한 시골마을이었다. 다들 생활이 어려워 우산이 넉넉히 있지도 않았거니와 있는 우산도 변변치 못한 때라 비가 오면 대책이 막막한 때가 많았다. 특히 학교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오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형제가 여럿인데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 가는 사람이 우산을 독차지하면 할 수 없이 비를 맞고 가거나 아니면 친구 우산에 기대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이 멀어서 비를 옴팍 맞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어찌어찌 방법을 마련했는데 머리와 가방만 젖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쓰고 가는 날도 종종 있었다. 이 방법의 장점도 있었는데 빨리 걷거나 뛰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걷는데 우산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친한 동네 친구의 우산을 같이 쓰고 다녔다. 우산을 같이 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일이다.(물론 연인이라면 괜찮겠지만) 가뜩이나 좁은 우산을 둘이 쓰면 반쯤은 비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때 친구들은 말없이 자신의 우산 속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서로를 토닥이면서 흙탕물이 튀는 비 오는 시골길을 나란히 걸으면 비 오는 날 등굣길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 옛 친구들을 생각하면 어린 날의 추억과 더불어 그리움이 밀려온다.     


지금 우리 집에는 우산이 수북이 쌓여있다. 내가 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증정품이거나 선물 받은 것들이다. 우산 종류도 다양해서 펼치면 두세 명이 써도 넉넉할 정도의 큰 장우산에서부터 접으면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될 정도로 작은 우산, 심지어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펴지거나 접히는 우산도 있다. 이런 우산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 오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각양각색의 우산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둘이 함께 쓰고 가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 현관에 우산이 비치되어 있었다. 무지개색 아주 좋아 보이는 우산들이었다. 부모님이나 학생들이 갑자기 비가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넉넉해지는 느낌이었다.      


비가 온다고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질 리 없지만 오늘은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격세지감이 느껴지면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니 말이다. 갑자기 옛날 노래가 떠오르면서 음악이 듣고 싶어 졌다. 김재기가 부른 부활 3집 ‘소나기’를 신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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