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고민 가득했던 우당탕탕 이직 기간에 대한 기록
아주아주 오랜만의 글이다.
신입으로 쿠팡의 문턱을 넘으며 작성했던 글이 마지막이니, 세상에나. 4년 만이다.
사실, 그간에도 여러 번 글을 기재할까 말까 작성했다 지우기를 거듭한 적이 더러 있었다. 아무래도 소속이 정해지고, 내가 쓰는 글이 특정 회사의 디자인 집단을 판단하는 잣대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덜컥 든 이후부터 오히려 생각을 밝히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고 널리 퍼질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 박제하는데 조심스러웠던 탓이다. (이상, 심각한 간헐적 글쓰기에 대한 그럴듯한 합리화였다)
그래서 이렇게 또 오랜만에 소속된 집단이 없는 틈을 타, 메모장을 켠다.
지난 4년간 커리어적으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신입으로 들어갔던 쿠팡에서는 한차례 승진을 했으며 그런 쿠팡에서의 3년 반을 뒤로하고 마이리얼트립으로의 이직, 그리고 또다시 퇴사. 이번에는 마지막 퇴사 이후 5개월여간 휴식기를 가지며 새로운 회사를 찾기 위해 거쳤던 이직 여정에서의 느낀 점과 다른 프로덕트 디자인 이직러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참고로, 간헐적 글쓰기를 하는지라 나눠 쓰기 같은 것에는 재주가 없어 글이 조금 길 수도 있는 점 양해 바란다.
지난 10월, 퇴사하며 가장 강력하게 들었던 생각이다. 정말 못해도 한두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어야지. 당시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디자이너로서의 자신감도 떨어지고 많이 지쳐있었다.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퇴사를 할 때즈음 되어서야 번아웃 비슷한 게 왔구나- 깨달았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느낀 것이 이직과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그리고 그 낯선 환경에서 내 역량을 다해 퍼포먼스를 내는 것에는 상상 이상으로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걸 간과했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그래서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는 나에게 그 에너지를 다시 충분히 채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필코 푹 쉬고 말 테다.’ 거의 소명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정말 꼬박 세 달 정도는 일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못 읽었던 책을 읽고 운동만 하면서 지냈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무중력 상태로 돌아가 부유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일 안 하는 삶 최고). 열심히 놀다 보니 일하던 나의 모습도 조금씩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스스로도 꽤나 좋아했기에. 그리고 한 가지 더, 현실적으로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passive income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은 나 같은 중생은 노동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유의 시간을 끝내고 착지하여 다시 어딘가에 발을 디딜 때가 왔다.
다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몇 가지 걱정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내가 과연 그동안 평가받아온 만큼의 가치가 있는 디자이너일까?’
‘디자이너로서의 나는 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로 매력 있는 인재일까?’
‘내가 스스로를 잘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증명하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어디서부터 나를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걸까.’
특히나 휴식기를 가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서 어디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약간 불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직 과정에서 그동안의 나의 커리어에 대해 ‘까보니까 별거 아니었네? 거품이었네?’ 하는 평가를 받을까 무섭고 그게 죽을 만큼 싫었달까.
그래서 두렵기는 했지만 이번 이직 과정을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좋은 기회로 삼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포트폴리오부터 면접 준비까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담백하지만 온전하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지원했던 회사들(모두 유니콘 기업에 지원했다) 중 90%의 회사에서 서류합격을 할 수 있었고, 면접의 경우에는 진행했던 모든 면접에 대해 합격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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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모든 회사에 대해 최종합격을 한 거라는 오해를 만들까 노파심에 이야기하지만, 제안받은 팀이 원래 원하던 팀과 직무의 방향이 다르다고 판단하거나 직무면접을 보면서 스스로 핏이 조금 안 맞다고 느껴서, 혹은 이미 최종합격한 곳 중에서 입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1차 직무면접까지만 진행한 곳들도 있다.
신입 지원을 하던 때를 제외하고, 오랜만에 취업을 위해 나름의 치열한 시간을 보냈기에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고심했던 그 과정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으휴 포트폴리오. 이놈의 포트폴리오.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사는 이상 언제나 나를 따라다닐 ‘이놈의 포트폴리오’는 어쩌면 이렇게 매번 만들기가 싫고 골치가 아픈지. 특히 이직 포트폴리오는 내 입맛에 맞춰 조물 거리기 좋았던 신입 포트폴리오와는 다르게 회사에서 실제로 진행한 프로젝트를 과정부터 결과물까지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했기에, 오히려 어떤 프로젝트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서 보여줄지 막막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처음에는 포트폴리오에 어떤 프로젝트를 넣을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다. 프로젝트 개수는 최대 5개 정도로 생각을 했고, 단순히 덩어리가 크고 ‘나 이런 것도 했어요’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보다는 요즘의 IT 기업들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역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들로 채웠다. 프로젝트를 고른 기준은 아래와 같다.
1. 앞단의 문제정의부터 가설 설정, 솔루션 제안과 결과 검증까지 정성/정량적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의 과정이 잘 보이는 프로젝트
2. 사용자 중심의 사고 과정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임팩트를 고려한 과정이 잘 보이거나 전략적으로 기여한 프로젝트
3. 기여도가 높고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과 선택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리뷰와 포트폴리오 관련 질문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해도가 높은 프로젝트로 선별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고른 각 프로젝트에 대해 정리를 하는 단계에서는 복잡한 의사결정과 사고의 과정을 함축적으로 잘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프로젝트당 장표가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표지 제외 최소 4페이지에서 7페이지 안에 간결하지만 핵심적인 문제풀이 과정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가지를 쳐내고 다듬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구성된 페이지들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구멍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없는지 여러 번 체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한 포트폴리오를 심사하는 사람들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읽는 입장에서 최대한 허들 없이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각각의 프로젝트들이 모두 같은 문법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모든 프로젝트들에 대해 최대한 통일된 프레임워크와 레이아웃을 사용하여 구성하였다. 특히 레이아웃 같은 경우는 조금씩 변주를 준 부분을 제외하고는 메인 컬러 팔레트에서만 변화를 주었다. 각 회사별로는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의 순서정도만 바꾸어 제출하였다. 제발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기만을 바라면서 한 군데 한 군데 지원했는데, 경력직이 되어도 여전히 지원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덜덜 떨리더라.
이후 면접 과정을 거치며 포트폴리오에 대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뿌듯했던 부분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PO, 프로덕트 총괄, 개발자 등 현업의 협업 관계에 있는 다양한 직군과 경력의 면접관 분들께 ‘포트폴리오 잘 만드셨더라고요-’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밤새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골몰했던,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들어간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노력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알아주고 보상받는 느낌이었달까. 물론, 모든 회사와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포트폴리오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내 포트폴리오에서도 부족한 부분은 많았겠지만 굳이 언급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원하기 전에 회사의 방향성과 현 상태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dart 사이트를 통해 재무제표를 살펴보기도 했다. (단, 나는 회계 지식이 거의 없고 숫자에 매우 취약한지라, 유튜브에서 ‘재무제표 보는 법’ 같은 걸 찾아서 떠듬떠듬 뒤져가며 야매로 읽음)
나에게 취업의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신입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면접이라고 답할 것이다. ‘면까몰(면접은 까보기 전에는 모른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답도 없고 잘 봤다고 생각해도 떨어지고 망쳤다고 생각해도 붙는 게 면접이기에. 나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한 사람으로서의 나와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역량을 제한된 시간 안에서 몇 개의 질문과 답변만을 통해 설득하는 과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대한 나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 생각을 잘 정제하여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신입 때 여러 채용 과정을 거치며 배웠던 것 몇 가지가 있는데,
1. 면접은 어느 회사던 대부분 그 형식과 질문이 비슷하다.
2. 아주 가끔 들어오는 압박 질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답변하기 어려운 난이도의 질문들은 아니다.
3. 하지만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횡설수설하거나 조리 있게 답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꼬리질문으로 공격받기 좋아져 면접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각 회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스스로의 성향과 경력에 대해서도 찬찬히 돌아보며 면접 질문 리스트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다만, 질문 리스트를 만드는 목적은 철저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를 넓혀 면접장에서의 당황스러움을 줄이고자 함이지 미리 완벽한 답변을 준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꼼꼼히 질문 리스트를 만들고 소설같이 휘황찬란한 답변을 준비해 두었더라도 실제로 면접장에서 그 모든 걸 완벽히 암기해서 뱉고 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오히려 답변에 갇혀 자신 있게 답변하지 못하고 준비된 답변에서 조금만 틀려도 '망했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질문 리스트만 쭉 많이 만들어놓고 각 질문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면서 그때그때 답변을 해보는 연습을 여러 번 했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연습과 여러 번의 면접을 통해 답변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정리되어 갔던 것 같다. (다들 알잖아요? Iteration!!)
질문 리스트의 경우에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눠서 정리를 했는데, 그 분류와 정리한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일반적인 공통 인성 질문
자기소개 (나는 아주 담백하게 경력과 내가 일해왔던 방식을 위주로 이야기했다)
퇴사/이직 사유 → 이직할 회사를 찾는 기준 (맥락이 잘 이어져야 한다)
디자이너로서의 강점/단점 (요즘은 강점 같은 단점은 먹히지 않는다! 솔직하게 준비하자)
직장에서 받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 (단순한 평가내용뿐만 아니라, 그렇게 평가를 받은 이유나 사례가 붙어주면 좋다)
현재 직무에서의 최종 목표/ 5년 뒤 모습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점
직무와 좀 더 관련된 질문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으로, 구체적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엇을(what)'보다는 '어떻게(how)'와 '왜(why)'가 중요하다. 따라서 그간의 경험을 돌아보며 각 질문에 적합한 사례를 하나씩 준비했다. 이 구간에서는 꼬리 질문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 뒤이어지는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변하기 위해서는 꼭 잘 기억하고 있는 '본인'의 솔직한 사례를 준비할 것을 추천한다.
가장 어려웠던 프로젝트
실패했거나 다시 해보고 싶은 아쉬운 프로젝트
업무/협업 프로세스
협업하면서 충돌한 경험과 해결 방법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 (보통 포트폴리오 리뷰는 자신 있거나 중요한 프로젝트 한두 개 만을 프레젠테이션 하기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들을 읽고 또 읽으며 디자인했던 과정을 꼼꼼히 복기했다)
각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중요한 질문 (회사별로 준비)
지원 동기 (지원 동기는 퇴사/이직 사유와도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기조는 같되, 각 회사에 대한 조사를 통해 회사별로 fit 한 다른 답변을 연습했다)
00 회사의 서비스가 가진 강점/단점
00 회사의 서비스를 사용해 본 경험 / 이용 시 느낀 점
00 회사의 업무 문화나 철학에 대한 생각
여기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중요한 질문들은 어느 정도 따로 분류되어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회사별로 그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나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춰 답변에 약간씩 변주를 주어 답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점은 회사에 따라서 질문이 아예 다른 부분도 많았고, 면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 생긴 궁금한 부분을 추가로 여쭤보기도 했다.
이렇게 지원한 회사별로 대응을 잘하기 위해서는 회사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다방면으로 각 회사를 파악하기 위해 세 가지 채널을 이용했다. 이 외에는 해당회사 재직자와의 커피챗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다.
각 회사의 공식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인재상에 대한 내용과 설명
→ 대략적으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기 좋다
각 회사의 테크 블로그나 디자인 아티클
→ 해당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 각 직무별 역할, 일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문제 풀이의 과정 그리고 그 사례 등 이 회사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직무적 깊이와 역량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협업이나 전체적인 인재상에 대한 깊은 파악을 위해서 디자이너와 관련된 글 이외의 것들도 될 수 있으면 모두 읽어보려고 했다.
각 회사에 대한 최근 1-3년간의 뉴스/기사
→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아주 좋다. 가장 번거로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검색해 보면 회사의 성과나 투자유치 상황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 혹은 론칭한 기능과 그에 대한 반응 그리고 앞으로의 사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운영함에 있어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특히 과제 전형이 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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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채널에서 스크랩한 내용들은 노션에 따로 기록해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보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이렇게 회사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채용 프로세스 안에서 단순한 ‘회사 파악’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는데, 바로 ‘몰입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직을 할 때 정말 이건 나의 원픽이야! 나는 이 회사 아니면 차라리 이직하지 않겠어!! 라며 회사 딱 한 군데에만 지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지원할 회사들 모두가 평소에 계속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용하거나 지켜봐 왔던 서비스였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 상황에서 위의 방법이 나에게는 단시간에 ‘원래부터 이 회사에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입사하고 싶었던 인재’에 빙의하여 몰입감 있게 면접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종의 치트키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회사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더 가고 싶어지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들도 있었다. 또한, 내가 지원할 회사와 나라는 사람이 잘 맞을지 가늠해 보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면접결과는 기실 내 실력과 무관한 다른 요소들(TO, 현재 팀에서 특별히 더 요하는 역량, fit이 맞는지 등등)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 중 무엇보다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셋, 마음가짐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면접을 소개팅처럼 생각해 보라고. 물론, 면접이 어떻게 소개팅 같겠냐만은 일방적으로 잘 보이려고만 하지 말고 나도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 대화를 나눈다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임하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면접을 보다 보면 대화하는 과정에서 각 회사가 업무에 있어 중시하는 부분이나 협업할 때 어떤 느낌일지를 가늠할 수 있기에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 입장에서의 가장 큰 목적은 '합격'이기 때문에 면접장에서 잘 보이고 싶은 욕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신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면접을 거치며 깨달은 게 있다면 분명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거다. 특히 신입 때는 잘 보이려다 면접을 보기 좋게 말아먹은 적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잘 보이고 싶은 나머지 왠지 모르게 본래의 나보다 더 뛰어나고 나은 사람처럼 보여야 할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과도한 스토리가 들어가거나 실제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 부풀려진 나는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아주 간단한 연계 질문에도 당황하게 되어 오히려 자신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제는 일을 해봤기에 안다. 업무로 바쁜 와중에 굳이 시간을 내어서 나를 더 알아보고자 한다는 건, 그만큼 내가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인재라는 이야기다. 한 가지 더, 회사는 내가 유일무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단 한 명의 유니콘 디자이너이길 기대하는 게 아니다. 보통은 서류를 통해 이미 확인한 역량의 진실성과 깊이를 검증하고, 앞으로 어떻게 같이 성장하고 나아가며 일할 수 있을지 함께 할 시간에 기대를 건다. 그러니 '쫄지 말고 솔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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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달리 먹고 스스로의 경험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면, 면접관의 질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실제 받았던 꼬리 질문들로 예를 한번 들어볼까.
Q1. 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이런 지표들 말고, 스스로 새로운 성공지표를 제안하고 적용해 본 사례가 있을까요?
→ 마음 같아서는 '네'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했다. 프로젝트에 더 깊이 있게 관여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도 뛰어남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주눅 들어 '아니요.. 그런 경험은 없네요..'에서 그치지도 않았다. 면접관이 제시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경험을 했어야만 내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경험 하나의 부재 때문에 바로 '실망이네요. 디자이너로서의 점수 -10점!' 점수가 매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에 새로운 성공지표를 제안한 경험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보며 협업했던 경험 중 결이 비슷한 경험으로 대체하여 이야기했다.
Q2. 의견 조율을 위해서 세팅하셨다던 그 회의, 정말 계획하셨던 1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끝났나요?
→ 이 또한 '네'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계획한 시간 내에 콤팩트하게 팀원들의 의견 조율과 합치를 이끌어내는, 프로젝트 매니징 능력까지 뛰어난 디자이너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회의는 1시간 안에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획한 시간 안에 회의를 못 끝낸 나를 공격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일이라는 게 늘 그렇게(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면접관들도 분명히 알터였다. 대신 계획한 1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논의를 어떤 팔로업 액션을 통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는지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자신 있고 솔직해지면, 질문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오히려 훨씬 진정성 있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지원자 입장에서 가장 두렵고 어쩌면 약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달까. 자신감은 감추고 포장하는데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롯이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내 생각과는 다르게 면접관 입장에서는 '어이구 저 친구 엄청 긴장했네' 했을 수도 있지만. ^_ㅠ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끝없이 줄다리기를 했던 두 달여간의 이직 과정이 이제 끝을 보인다. 앞으로 몇 개월간은 또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아직 완전한 해동이 끝나지 않은 이 이직 시장에서,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리며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진 나의 이야기를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에-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4년 뒤는 아니길 바라며- 또 한 뼘 더 자란 나의 성장 기록을 들고 찾아오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