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란, 운명이 우리에게 위대한 책임을 지우기 전에 여러 가지로 우리 됨됨이를 시험하는 것.”
어디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문장을 처음 맞닥뜨리고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흔한 인사말로 하는 꽃길만 걷자라는 그 말이 무색할 만큼 난 참으로도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넘어지고 울고 좌절했다. 평온해 보이는 세상과 달리 나의 세상은 찌그러지고 고장나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위의 문장을 만나고 나는 나를 되돌아보고 희망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아픔, 슬픔이 그저 고통이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었구나라고 새롭게 마음먹었다.
내 인생 가장 아픈 기억은 왕따의 상처이다. 나는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4년 내내 동고동락했던 대학 동기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내 소심한 성격이 문제일까, 지방에서 혼자 수도권 사람인게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던가, 수없이 자책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위축되고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후유증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삐걱거렸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나는 점차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 혼자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갔다. 혼자서 미술관을 가고,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썼다. 어떤 날은 뼛속 깊이 사무치게 외로움이 스며들어 견디기 힘들었던 때도 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살아갔다.
이렇게 외로움과 고독으로 점철된 나이지만 어두움의 저편에서는 많은 기쁨도 존재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계획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홍콩과 마카오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를 계기로 여행을 좋아하게 된 나는 16박 17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독립출판으로 여행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진주알을 엮듯 내 소소한 기쁨을 엮어 나갔다.
점차 자신감이 붙은 나는 직장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초등교사인 나는 2년 차 때, 교원정보소양인증대회에서 300여 명 가운데 1등을 하여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그 후 쓰기 수업인증 대회, 과학탐구대회, 인성교육연구대회 등에서도 수상을 했다. 수업연구교사 전문가 인증을 받기도 하고 이달의 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나만의 성취감과 성공경험을 쌓아갔다.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나는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만 4년 근무하다 처음으로 도시 학교로 전근 간 6년 차 때, 학급붕괴를 맞이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나는 또다시 닥쳐온 고통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힘들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대학생 때의 왕따를 아이들로부터 받은 기분이었다. 요즘 연일 뉴스에서 터져나오는 학부모 민원, 교권 침해로 인한 교육 붕괴를 너무 일찌감치 맞닥뜨렸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겐 지지해줄 사람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오롯이 혼자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해나갔다.
휴직을 하는 동안 문제점을 개선해 나갔다. 관련 영화를 보고 서적을 탐독하며 교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디태치먼트>, <선생 김봉두> 같은 영화는 교육자로서 내 교육관을 확고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PDC학급긍정훈육, 123 매직, 교사역할훈련, 감정코칭 같은 책은 교육기술, 방법 등을 보완해 주었다.
드라마 학교 2013을 정주행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나와 성격도, 교육관도 비슷한 배우 장나라가 열연한 정인재 교사가 등장한다. 깨지고 무너지면서도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는 정인재 선생님의 모든 언행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이들 앞에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읊었던 정인재 선생님의 진심이 내 가슴에 공명을 일으켰다.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상처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고 한다. 왕따, 학급 붕괴, 교권 침해 등 많은 좌절과 아픔을 겪은 나이지만 서두에 썼던 문장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모든 시련과 고난이 운명이 나에게 위대한 책임을 지우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라고. 소외된 아이들, 학교폭력에 고통받는 아이들, 교권침해로 고통받는 후배교사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내가 극복한 과정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다.
조재가 진주가 되기 위해서는 모래가 살을 비집고 들어가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겪은 아픔, 슬픔들이 진주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더욱 단련되고 강해져서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아이들, 선생님과 함께 희망과 연대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내가 시련과 좌절 속에 고통받을 때 가족들이 강아지를 입양하라고 추천해주었다. 강아지에게 희망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 가족만 보면 꼬리치고 달려와 안기는 희망이. 우리 집 강아지 희망이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듯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며 또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