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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Dec 25. 2024

고단한 현실을 환상과 사랑으로 물들이는 크리스마스 동화

E.T,A.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


차이콥스키의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공연된다.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은 하얀 설경을 배경으로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무용수들의 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준다. 이야기보다는 음악과 춤 공연을 감상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나 원작인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은 이야기가 좀 더 흥미롭다. 아름다운 동화라는 형식 안에 권력층에 대한 풍자와 미와 품격에 관한 인생을 살아가는 진리가 담겨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동화 <호두까기 인형>안에는 액자처럼 또 하나의 동화가 삽입되어있다. 그건 바로 호두까기 인형이 어떻게 해서 호두까기 인형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뉘른베르크의 왕과 왕비에 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시지를 매우 좋아하는 왕과 그런 왕을 위해 소시지를 대접하는 왕비와 이 둘 사이의 사랑스럽고 예쁜 공주 피를리파트 그리고 이들 가족에게 저주를 내리는 마우제링크스 부인. 여기까지만 보면 왕과 왕비, 공주는 억울한 피해자일 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마우제링크스의 부인의 저주를 풀어준 드로셀마이어 청년이 저주에 걸리자 인정사정도 없이 공주와 결혼시키겠다는 약속을 취소하고 추방시킨다. 여기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호두까기인형이 된 드로셀마이어 청년은 이 동화의 주인공인 마리의 사랑을 받아 저주에서 풀려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동화를 읽고 나면 묘한 여운과 함께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애매모호한 기분이 든다. 마리는 부모님께 계속해서 자신이 호두까기 인형과 여행한 곳이며 그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이야기하지만 부모님은 마리가 아직 꿈에서 덜 깼다며 꾸짖는다. 아버지는 꼬마거짓말쟁이라고 나무라기까지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듯한 드로셀마이어 대부까지 허튼소리 취급을 한다. 하지만 결말에서 마리는 분명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 인형과 결혼식을 올리고 아몬드 설탕 과자나라로 함께 떠난다. 아마도 이 모든 것마저 작가가 의도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거짓말 같은 일들이, 믿기 힘든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곤 하니깐.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리와 호두까기 인형(드로셀마이어 청년)이 서로에 대한 진심과 사랑을 확인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부모님, 대부, 진료하러 온 의사까지 모두 마리를 거짓말쟁이 취급할 때 마리는 분명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인형과 보낸 달콤한 시간들이 유리에 팔이 배인 아픔까지도 잊게 만들었을 만큼 황홀했으니깐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동화책을 덮고 나니, 마우제링크스의 저주처럼 온갖 추악한 일들이 눈앞에 닥쳐도 마리와 호두까기인형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있다면 삶이 견딜만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고단한 현실이 때로는 설탕과자나라처럼 환상적으로 채색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호프만은 법관이나 작곡가이면서 밤에는 작가로 활동했는데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들려준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인 것 같다. 삶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 찼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를 환상으로 이끌어줄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운 진리를 꿰뚫어봐야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마리와 호두까기 인형처럼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https://youtu.be/BQgFgrWbRKA?si=6zKvmr65jVMhct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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