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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영화 <소울>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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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은 우리가 사는 삶을 즐긴다는 게 뭔지 알게 해 준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이 나온다. Seize the day라고도 하는, 현재를 즐겨라는 뜻이다. 이 말은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은 삶의 목적을 찾으라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몰아붙인다.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은 무시하면서 더 위대한 것, 더 큰 성취를 하라고 채찍질한다.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 또한 재즈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학생 밴드부 교사를 하고 있다. 조의 엄마는 조가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것을 마다하고 재즈 밴드의 피아노 연주가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의 아버지 또한 뮤지션으로서 수입이 변변치 않아 엄마가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조의 삶의 목적은 재즈 뮤지션이었지만, 조의 엄마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은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이는 직장을 갖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꿈을 좇는 자녀와 그를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은 심심찮게 목격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이나 즐거움을 찾는 것, 그 자체로 삶은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대구에 고립·은둔 청년이 2만 명 가까이 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또 다른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OECD 평균보다 0.63점 낮은 수치로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전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는데 국민 개개인의 행복도는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자살률은 최고 수준이다. 뉴스에서는 돈이 많을수록 비례해서 행복도도 올라간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극심한 경쟁일변도의 분위기와 비교문화가 만들어낸 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삶에서 다른 이보다 앞서가거나 화려하게 성공한 삶이 멋져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삶이 꼭 행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조는 그토록 원하던 재즈 밴드의 피아노 연주가로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지만, 다시 그 일을 반복하려니 허무함과 허탈함에 젖어든다. 중요한 건, 행복이란 누군가를 제치고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한낮에 먹는 피자 한 조각, 잠깐 쉬어 올려다보는 푸르른 하늘, 바람에 살랑이는 낙엽을 바라보는 것에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래도 생존하기 위해선 성공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공이란 게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성공이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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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징어 게임>처럼 모두가 경쟁의 대열에 합류해 최고가 되고자 하지만, 경쟁에서 이탈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금수저도 아니고 엘리트 집안도 아니지만, 나름 많은 것을 이뤘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다. 이런 나를, 소위 잘 나간다는 기득권층이 괴롭히고 따돌렸다. 그러한 것을 보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내면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행복은 내면의 평화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조 가드너와 그의 지구 동행자 22번이 깨달았듯이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내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중한 것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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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살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갔다 온 박사 교수 의사 이런 사람들 중에 그 좋은 머리와 많은 학식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망치는 사람들 많이 보았어. 중요한 건 네가 행복한 거고,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거고, 그리고 힘든 이웃을 돕는 거야. 공부를 하고 유학을 가는 거 다 그걸 위해서야. 그게 아니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p.48


https://youtu.be/9GdZIx-3gSA?si=ZwtcOth_x5SHAd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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