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고 그리기의 저주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생각한다.
"평소 그리던 대로 그리면 되지!"
그런데 그 평소 하던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평소에는 누가 시켜도 하지 않을 그런 이상한 짓(갑자기 새로운 재료나 기법을 쓴다던가, 평소 그리지 않던 소재를 그리는 등)을 한다.
한껏 각 잡고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 지우고, 진중하게 마음잡고 겨우겨우 다 그리다가 성에 차지 않아 다시 덮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온갖 스트레스와 함께 '그림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제발 살려줘!!)으로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모아둔 박스를 열어본다.
그렇게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까지 액자에 넣어 겨우겨우 라인업을 정돈하고 나면 안도감과 함께 또다시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긴 한 건가.'라는 자괴감이 든다.
도대체 왜!!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데 왜 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삐끗하는 것일까?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왜 그런 것일까?'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욕심 때문이다. 욕심 중에서도 '더 잘하고 싶은' 욕심.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평소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화근인 것이다. 연습이 아닌 실전,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지금 나의 능력과 상황을 보지 않게 된다. 결국 평소 '하던 대로' 잘 해온 것들도 엉키게 된다.
평소처럼 그리되, '더' 잘 그리려 욕심내지 않는 것. 그것만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