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얼마 전 벚꽃을 보면서 그 모습이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아몬드 나무에 꽂혀서 퍼즐을 사왔다. 퍼즐을 많이 맞춰보진 않았지만 150 피쓰의 그림은 최대 2~3시간이면 완성을 한다. 다른 것은 퍼즐 조각 하나하나가 색체든 느낌이든 확 다른데, 이 그림은 다 비슷해 보여서 힘들었다. 그래서 잠자기 전에 조금씩 맞췄는데 며칠이나 걸렸다. 그래도 난도 높은 퍼즐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 참 재밌었다. 퍼즐을 맞출 때 마치 폴리스 라인을 치듯이 다른 물건이 침범할 수 없게 온 책상에 퍼즐을 깔아놓는다. 이걸 내 나름대로 '퍼즐존'이라고 부른다. 퍼즐존이 존재하는 동안은 책상에서 다른 걸 할 수가 없다. 책상에서 다른 일을 하려면 꼼짝없이 집중해 빨리 끝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땐 비슷한 느낌, 색채, 조각의 모양대로 분류를 하고 하나씩 맞춰간다. 맞추면서 '이럴 리 없어. 이건 도저히 없다! 바닥에 떨어뜨렸거나 조각이 없어'라며 괜히 혼자 음모론 제기도 하고(근데 이번엔 진짜 한 조각이 없어서 AS를 받았다), 지레 겁먹어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기도 한다. 또 '오늘은 잘 안 보이네 그만해야지' 하며 조기 철수를 했다가 다음날 '오늘은 반드시 끝내겠어! 잘될 것 같아'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호기롭게 재도전을 한다.
어제는 아무리 봐도 안 보이던 게 오늘 너무 쉽게 보이기도 하고, 앉아선 안 보이던 게 일어서면 보이기도 한다. 너무 맞춰지지 않아서 억지로 끼워 넣어보기도 하지만 제자리가 아니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찾는다. 그러다가 힘들게 찾아 딱 맞아떨어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렇게 퍼즐에서 인생을 배운다. 또 이렇게 퍼즐을 맞추다 보면 저절로 집중이 돼서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게 참 좋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할 때 가끔 퍼즐을 꺼내서 맞추고 부순다. 내재된 파괴본능이 깨어나 조각들을 부술 때와 퍼즐존을 정리할 때는 또 신이 난다.
이렇게 온갖 생각을 했지만, 끝나고 보니 ‘과정’이란 단어 하나가 묵직하게 남았다.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라고 항상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결과를 더 중요시 여겼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에 퍼즐을 맞추면서는 과정이 무의미하거나 결과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오히려 과정을 더 즐겼던 것 같다. 완성해서 기쁘지만, 그 과정이 참 재미있었고, 떠오른 생각들도 좋았다. 모든 일을 돌이켜보면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결과가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또 언제 삭막한 현실에 사로잡혀 결과론자&실적주의자 모드로 바뀔지 모르지만 오늘의 생각은 이렇다.
아래에는 '과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글이라서 써놓고 싶었다. 이 글은 사실 ‘일’보다 ‘사람 사이 관계’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는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보면 뭔가 찡한 느낌도 든다. 이 글을 마음으로 알아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그저 눈사람을 쌓아 올리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야.
녹아 사라지는 것이 꼭 허망한 일만은 아닐 거야.
눈사람을 만드는 동안 우리에게 남는 것이 있을테니까.
호호 손을 불어가며 꾹꾹 눈을 뭉치고,
크게 굴려갈 때의 기대와 설렘, 천진한 웃음,
차가운 촉감과 뜨거운 입김도 함께 들어 있잖아.
눈사람은 형체도 없이 녹아 버린다고 해도,
그 기억은 분명하게 남아 있을 거야.
시간이 흘러 떠올려 보았을 때 희미하게 미소짓게 하는 건,
얼마나 멋진 눈사람을 만들어냈는지도,
얼마나 오래 녹지 않았는지도 아닌
그것을 만들던 추억인걸.
-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민미레터
2018.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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