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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May 25. 2024

이과 여자의 운명적 만남

 “너는 어쩌면 그렇게 수학을 잘해! “

교실 맨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중간에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와서는 던진 말이다. 얼굴은 살상기되어 있고 손에는 수학 문제집이 들려있었다. 혼자서 끙끙대고 풀어보다가 결국 내게로 온 것이다. 나는 친구들이 내미는 수학 문제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엉켜진 실타래를 풀 듯이 풀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정답을 맞히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개운했다. 그 개운함 때문에 수학 문제에 빠져들었고 대학 전공에서 직장까지 쭈욱 찐 이과 여자였고 물리를 좋아하는 이과남자와 결혼했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새로 사야겠지?”라며 남편이 말을 건네온 건 아이들 간식거리 준비로 정신없을 때였다.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로, 또 직장인으로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고 취미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던 문화 암흑기였다. 우리 부부는 수많은 검색과 질문과 고민 끝에 DSLR 카메라와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주문했고 마침내 택배 상자가 도착했을 때는 마냥 흐뭇해했다. 그러나 불행히 오랫동안 우리 집 DSLR은 장롱 깊이 넣어져서 존재감을 잃어갔다.  사진 로망을 가지고 있던 남편이 DSLR을 가지고 나가기엔 너무 바빠진 것이다. 주인을 못 찾은 DSLR을 보고 있자니  슬슬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지만 사진에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가까운 곳 문화센터에서 사진강좌가 개강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마침 나는 휴직 중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아이들도 오전에는 유치원에 등원한다. 이건 사진을 배우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주저하지 않고 등록했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운명적 만남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 강사가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손에는 사진집을 여러 권 안고 있었다. 사진을 배우기 전에 사진집을 한번 보라는 강사의 배려였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것은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집이었는데  갓난아기 윤미가 빙그레 웃으면서 누워있는 사진부터 시작이었다. 계속해서 윤미가 보행기를 타다가, 놀이터에 가서 그네타고, 초등학생이 되고, 또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걷다가, 대학 졸업식에 꽃을 들고 졸업을 하더니 이어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장면이 마지막 사진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기의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차곡차곡 담아놓은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아빠의 따듯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 왔다. 감동이다!



 그 여운을 간직 한 체 또 한 권의 사진집을 골랐다.

종군 사진작가로 너무나도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전혀 아는바 없이 책장을 넘겼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전쟁터로 가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하고 참혹했다.

사진이 이렇듯 감정을 포착해서 전달할수있고 더구나  감동까지 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놀람으로 기계치에 가까웠던 내가 어려운 사진 기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경쾌하다.

집 근처 공원에서 풍물패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풍물의 역동성을 담으려면 나도 그들과 함께 뛰어야 했다. 조심, 조심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리, 저리 뛰면서 초점을 맞추고 적절하게 조리개도 조절하며 찍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집중하면서 즐겁게 풍물가락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 셔터를 어디서 눌러야 될지 감이 잡힌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정말이지 개운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해결하고 느꼈었던 개운함과 똑같다. 수학 법칙을 이해하듯이 피사체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엄청난 수학 문제를 풀어야 문제가 보이듯이 엄청난 양을 찍어야 그중에 겨우 하나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한다. 그러나 수학과 다른 것은 사진은 후속 작업도 상당히 중요하다. 수많은 사진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별하는 것도 쉽지 않고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건 거의 노동이다.

물론 보수는 전혀 없다.  


 

어렵게 선별해서 포토샵 작업을 마친 여러 장의 풍물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들을 어떡하지?''어떻게 전달하지?' '혹시 사진을 찍었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도 피사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를 않았다. 오랜 궁리 끝에 풍물패 홈페이지에 “사진 찾아가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들을 올렸다.

'감사해요*^^*'

'사진 너무 잘 찍었어요!'

'복 받으실 거예요~'

 피사체들의 댓글들이 쏟아졌고 하트와 감사의 이모티콘이 흘러넘쳤다.


누군가의 하트 때문이었을까?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으면서 나 역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풍물패 덕분에 맘껏 자유로웠고 한바탕 개운했다. 또한 그 개운함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었다.

풍물사진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사진들을  온라인 신문이나 지역 신문에 글과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평촌 학원가를 찍었던 사진과 글*마*뉴스 메인 기사로 하루 종일 떠 있었고 곧이어 인사동이나 산사의 풍경도 메인으로 올랐다.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한 사진과 글이어서 손발이 오글거린다. 아마  온라인 신문의 초창기시절이라 가능했을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지역 시청 블로그 시민기자로 글을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운명적이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과적인 성향으로 가능했지만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피사체들을 이해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풍부해진 것은 문과적이었다.

이제 나는 은퇴를  했고  출근대신 아침마다 우리 집 강아지 시루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무거운 DSLR대신 핸드폰도 꼭 챙긴다.

'오늘은 또 어떤 감정을 담을 수 있을까?'

설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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