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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Nov 26. 2023

형벌

벌써 30분이 흐른 것 같다.

한 장소에서 계속 망설이고, 서성이고, 주저하고 떠나지 못하고 있다. 때는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백화점과 아울렛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사거리는 쇼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머플러 코너에서 타임서비스로 할인을 하고 있었고 유명한 브랜드여서인지 사람들은 둥그렇게 둘러 모여 예쁜 색상을 고른다고 정신들이 없었다. 그 북새통에 나는 30분째 서서 인파에 밀려났다가는 다시 앞으로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의 여윈 얼굴을 떠올리고는 머플러를 집어 들었다가...

엄마가 뱉던 모진 말이 떠올라서는 다시 놓았다가...

엄마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라서 또다시 집어 들었다가..

엄마가 오빠에게만 베풀던 호의가 떠올라서는 다시 또 놓았다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는 옷을 사다 주면 참 좋아하셨다. 사이즈도 색상도 잘 골라서 엄마에게 잘 어울렸고 내가 사다 준 옷으로 엄마가 예뻐지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고 옷장 안에는 내가 사준 옷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엄마의 옷 고르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반면에 남편과 아이들의 옷 고르는 횟수는 늘어만 갔다. 옷을 거의 사지 않던 엄마는 점점 더 낡은 옷을 입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 멀어져 갔다. 엄마는 엄마대로 섭섭해하셨고 난 또 나대로 섭섭해했다. 결국 머플러는 오랫동안 망설임 끝에 사지 않았다. 다가오는 구정에는 선물은 생략하고 용돈을 담은 봉투만 드릴 생각이었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은 병색이 역력했다. 석 달 전보다 몰라보게 많이 야위셨다. 병원에 안 가시겠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리시는걸 억지로 의사에게로 향했다. 여태까지의 엄마의 모습 중에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6개월 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머플러를 산다 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엄마가 떠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그 추웠던 날 30분 동안의 망설임이 또렷이 기억이 나면서 가슴이 저며온다. 마치 형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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