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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Nov 16. 2023

작센하우젠의 장미

유럽여행에서


와! 넓다. 눈앞에 펼쳐진 덩그런 공간.

그 가운데 서있는 나무 두 그루는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낮은 건물들이 곳곳에 있고 여기저기 그룹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보다는 진지하고 숙연한 표정들이다.  이곳은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온 곳인데 아주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주변에 상가들도 별로 없다. 힐링이 될 것 같은 마을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정문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Arbeit macht frei". 한국말로 번역하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이다. 과연 열심히 일을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서대문 형무소보다 수십 배는 더 넓을 것 같은 이곳은 작센하우젠 수용소이다.  1936년 독일 나치에 의해 세워졌다.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보다 훨씬 더 끔찍했던 곳이란다.  이곳에는 유태인뿐만 아니라 나치에 반대하는 정치인들, 동성애자, 종교인들을 열성인자로 분류해서는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당시의 자료와 정황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독일 정부는 나치의 참상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없고 한국인 투어도 없고 우리 일행은 오로지 구글 번역기에 의지해서 보고 느끼고 있을 뿐이다. 햇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독일의 스산한 겨울 날씨에 자꾸 움츠러들고 있었다. 어제의 파아란 하늘이 그리워진다. 스페인에는 한국인들도 많았고 음식도 맛있었으며 사람들이 항상 웃으며 친절했다. “도대체 여기를 왜 왔나?” 그렇게 마음속에서 징징대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힘들여 왔으니 보고 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다짐을 하며 짐짓 씩씩하게 이 건물, 저 건물 오가며 둘러보았다.  

3m 높이의 벽, 고압 전기 철조망, 비위생적인 숙소들, 좁디좁은 독방, 총살 집행장, 인체 실험실, 화장터, 가스실.... 점점 소름이 도았고 건물 내부에 들어가기가 두려워진다. 마음은 불편해질 대로 불편해진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 건가...?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 한번 보고 숨을 고르는데 저어기 높이 소련이 세웠다는 위령탑이 보인다. 그러니까 고즈넉해 보이는 이 넓은 광장은 수감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모두 20만 명이 수감되었다고 한다. 그중에 절반이 질병과 생체실험으로 죽어 나갔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에는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기사나 사진도 꽤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사진 중에 젊고 총명해 보이는 여성이 울부짖으면서 단두대에 서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번역기의 도움으로 죄목이 ‘불미스러운 관계‘라는 걸 알았다. 상대방이 같은 수감자인지? 아니면 간수들 중의 하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 남성은 보이지 않고 홀로 공개 재판을 받았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썸을 타다가 사형된 것이다.  

“아! 이곳 정말 끔찍한 지옥이었구나.”새삼스러웠다. 


그렇게 몸소리치면서 전시물들을 보다가 서서히 지쳐갔다. 그런데 점점 지쳐가는 나를 전율케 한 전시품이 하나 있었다. 수감자들이 자유시간에 보았던 책이나 일기장 같은 것이 전시된 부스였는데 그중에 아주 곱게 장미꽃이 그려진 엽서 하나가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자세히 보니 수감자가 직접 그린 생일 카드였다. 꽃도 예뻤지만 글씨체도 어찌나 정성스럽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생지옥에서 어쩜 저리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꽃을 그릴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아무 죄도 없이 끌려와서는 죄수복을 입고, 머리가 깎이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고, 죽도록 일하고도 깡통에다 음식을 받아야 했고, 더럽기 짝이 없는 좁은 곳에서 짐짝처럼 자야 했고, 이유도 모르고 불려 가서는 마루타가 되고,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쓰러져 죽어 나가는 이곳에서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예쁜 장미꽃을 그렸던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장미꽃을 그린 그 순간만은 편안했을까? 결국 사람은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적응해 가면서 천국을 만들어 내는구나!  

실로 인간이 위대하다고 느껴졌다.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이여..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룩하신 신이여!! 제게도 지옥 속에서 천국을 만들어내는 절대 힘을 주소서~~~ 


수용소의 분위기에 시들 시들 말라가던 나는 장미꽃 덕분에 조금은 생생해져서 수용소를 나설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에 이곳에서 생을 마친 모든 수감자들에 애도를 표하고 살아남은 생존자에게는 존경을 표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뉘른베르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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