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열심히 유튜브를 뒤지고 있었다.
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조금 더 시원하고 조금 더 재미있는 곳을 찾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 ) 금강산에 갈래?
나 ) 엉... 무슨 소리야!!!?
머리로는 20년 전 금강산 방문을 떠올리며,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눈으로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의 반응에 남편은 고르고 고른 유튜버의 멋진 영상 하나를 내민다.
드론으로 찍은 영상이었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광활한 풍광이 압도적이었다.
여기가 진짜 금강산이라고?
강원도 회양 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있는 금강산은 주위 면적이 160km에 달하고 무려 일만 이천봉에 이른다. 그중의 첫 번째 제 일봉은 강원도 고성에 있으며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단다.
그렇게 2024년 여름휴가는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금강산 제 일봉, 신선봉으로 가게 되었다.
금강산 화암사라는 푯말이 내걸린 사찰은 안개에 싸여 고즈넉하고 신비스러웠다.
법당에 들어가 삼 배 후에 주변 보살님께 신선대에 오르는 위치를 물으니 수바위쪽이 편할 거라고 귀띔해준다. 신선대는 성인 대라고도 불리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금강산 신선봉의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의 검색으로는 두 가지 코스가 있었다.
하나는 40여분의 단 코스이며 급경사이고 또 한 코스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며 완만한 코스라는 정도였다. 보살님이 알려주신 수바위코스가 좀 더 완만한 코스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수월할 거라는 말과는 달리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속 급경사에 계단이다.
여기가 원만한 길 맞는 거야?
거기다가 운무는 잔뜩 끼여있어서 앞이 훤히 보이지도 않는다.
운무에 싸여있는 산이 몽환적이고 또 다른 세계로 한발, 한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탁 틔인 전망을 보는 데는 꽝이다.
우리는 슬슬 신선봉에 올라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압박해 왔다.
그 당시 시간은 오전 9시경!
부지런한 등산객이 벌써 하산하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애매모호했다.
"너희들 그리 열심히 올라가도 아무것도 못 볼걸!"
딱 그런 표정이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마침 또 한 부부가 산에 오르고 있었는데 일기예보에 11시에 맑아진다고 했다며 얼굴이 밝았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보기 쉽지 않은데요!"
도대체 우리는 신성봉에서 무엇을 보려고 이토록 전전긍긍하고 있나?
드디어 도착!
산행시작 한 시간 소요.
난이도는 중하정도
경사가 급하지만 등린이도 도전 가능
거리가 50m는 될 거 같은 마당바위가 정상에 펼쳐진다.
덥고 습한 날씨에 급경사로 이어지는 계단을 한 시간이나 오른 고생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 맛에 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그리고 마당 바위 맞은편에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쫘악 펼쳐져있어야 했다.
그러나, but...!
안개와 구름에 싸여 울산바위는 보였다. 말았다 한다. 그것도 아주 조금만 보여주고는 금방 운무에 자취를 감춘다. 금강산 신선봉에서 저 건너 설악산 울산바위를 보는 게 이번 여행의 포인트인데 어쩐다.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기다려보자~~~!!!
11시에 맑는다고 네이버가 그랬으니 믿어보자.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대에서 우리와 똑같은 소망을 품은 이들이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울산바위를 쬐려 보고 있다.
언제 보여줄 거니? 너의 모습을!
아쉽게도 울산바위는 우리의 기다림에 응답하지 않았다.30여분을 기다려도 마찬가지 상황이 계속됐다.
하나, 둘 마당바위를 떠나고 있었고 우리도 아쉬워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좋은 계절에 다시 오자!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20년 전에도 느꼈지만 금강산은 바위가 압도적이다. 규모도 컸고 모양도 다양했다.
북한에서는 그 바위에 빨간색 글씨로 문구를 써놓아서 깜짝,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올라갈 때보다 비교적 편안했던 하산길을 끝으로 우리의 산행은 끝났다.
이번 금강산 산행은 짧았지만 강렬했고 덕분에 여름을 버틸 힘을 얻었다.
덤으로 20년 전 기억을 소환할 수도 있었다.
가슴 설레며 보았던 비봉폭포, 구룡폭포는 여전하려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북한 안내원들은 잘 있겠지?
인간의 기술같이 느껴지지 않던 북한 서커스단은 여전히 공연을 하고 있으려나?
기억 저편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또한..
나는 20년 동안 잘 살아오고 있었나?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