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주변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쩌릿 쩌릿 아픈 젖몸살로 힘들어하던 때였다. 이제 막 태어나서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수가 제일로 예쁘다는 간호사의 한마디에 통증으로 찌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곧 면회시간이 되면 신생아실로 뛰어가서 제일 예쁜 수를 만나러 가야지! 다짐하면서 입원실 벽면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첫째 일이는 임신 5개월 무렵 의사가 먼저 아들임을 넌지시 알려주었고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셨다.
내 주변 아무도 아들을 강요하지는 않았는데 왠지 쾌쾌 묵은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의사 선생님이 통 입을 열지 않으셨다. 진료 갈 때마다 오늘은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는데 매번 허탈하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나의 안달을 다아 안다는 표정으로 “이번에는 예쁜 공주야! “라고 툭 한마디 건넨다.
"어머나!세상에 딸이길 바래고 또바랬는데.."
누군가 나의 바람을 들어주었나보다.
병원 밖을 나서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고 풍선이 되어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둘째가 딸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세상은 핑크빛으로 변했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병원 안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봄날이었고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들은 숙제처럼 딸은 선물처럼 내게로 왔다.
엄마! 다녀올게...!
오늘도 수는 출근하기 20분 전에 일어나 머리를 온전히 말리지 못하고 급히 나선다.
손에는 이번에 새로 장만한 suv 차량 키를 흔들며 치렁치렁한 와이드 바지에 짧은 크롭티를 걸치고 신발을 신고 있다.
"야! 맨날 티쪼가리냐? 셔츠도 가끔은 좀 입어라!"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suv차량으로 차박을 하는 게 로망이라고 하더니만 급기야는 얼마 전에 중고차를 구입했다.
또, 며칠 전에는 당근으로 캠핑용 탁자를 구입하고는
새 제품을 싸게 구했다고 벙긋거린다.
시간만 되면 캠핑 유튜브를 뒤지는 수는 아마도 곧 차박에 나설 태세다.
어느 늦은 저녁 주방에서 설거지를 함께 하던 수에게 살며시 물어보았다.
”차는 샀고 네가 살 집은 어떻게 장만할 건데? “
혹시 맘 상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던 나와는 달리 수는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집을 살 능력은 없어. 엄마, 아빠랑 함께 살 거야!"
수는 심플하다.
복잡한 결혼도 안하고 반려견 시루를 자식처럼 돌보며 휴일이면 캠핑 다니고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근심 걱정 없이 즐겁게 살고 싶은 것 같다.
29년 전 병원에서 딸이라는 말을 듣고 날아갈 것 같았던 나는 수에게 무얼 기대했었나?
수가 행복하면 뭔들 상관없지않을까? 마음을 다독 이지만..
29년 전 받았던 선물이 버릴 수도 쓸 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