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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Dec 12. 2023

슬기로운 노후생활

그녀들의 수다

 

온통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홍대 입구에서 캐주얼한 복장으로 화기애애 떠들고 있는 중년 주부들을 본적이 있다면 어쩌면 그녀들일지도 모르겠다.맥주 한잔과 크림치즈 까나페를 안주삼아 벌써 한 시간 째이다.


 대화의 주제는 ‘덕질’이다. 연예인 덕질이 노후대책이 될 수 있다는 괴상한 논리를 편 것은 S였다. 가왕이라 불리는 조용필의 팬클럽 회장이 70대 노부부임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꼭 돈과 건강만이 노후대책은 아니야. 집중할 수 있는 놀꺼리를 만드는 것도 노후대책이 될 수 있다고’ S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S의 노후대책 타령은 40대부터였던 거 같다. 집에서 놀고 있는 비싼 카메라가 못내 아까워서 동네 문화센터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는데 뒤늦게 시작한 사진에 그녀는 완전히 푹 빠져들었다.

‘정말 카메라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찍은 거 같애. 주로 애들을 찍었는데 애들이 귀챦다고 카메라를 피해 도망갈 정도였어’

S은 그때를 그렇게 회상했다.

육아에 지쳐있던 S에게 한줄기 빛 같았다고 한다.


덕후답게 항상 카메라는 손에서 떠나지 않았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사진 작가 할거냐? 고 빈정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S가 자신있게 대꾸했던 대답이 ‘아니요! 사진은 저의 노후대책이예요.’였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S에게 되묻곤 했다. ‘나이 들어서 졸업식 사진이나 결혼식 사진 찍으러 다닐 거야?’

‘아니요! 카메라 만 있으면 하루 종일 혼자서 잘 놀 수가 있어요. 이것만큼 훌륭한 노후대책이 어디 있나요?’ 그렇게 S는 호기있게 대답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또 다른 덕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H는 ‘야! 덕질도 돈이 있어야 하지?’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기로 했다.

워낙 말이 없던 S였다. 참고 들어보기로 한다.

S가 사진 덕질에 몰두해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가야금 강좌가 시작됐고 그녀는 서둘러 신청했다. 그렇게 S는 또 하나의 덕질을 더했다. ‘사실 가야금은 재능이 없었어.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지만 꽤 성실하게 연습했어!’ 목이 탔는지 S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잘 안되면서도 그렇게 가야금을 붙들고있었던 건  성금련류 짧은 산조 한바탕을 완주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야!’  


S는 둘째를 낳으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 두었었다. 그무렵 예전 직장동료들은 승진도 했고 사회적 대우도 전업주부에 비할 바 없이 높아져가고 있어서 S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고 고백했다.

예전 동료들이 은퇴후 빌빌거릴 때 당당하게 산조 한바탕을 완주해서 자랑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두 가지의 덕질, 사진과 가야금은 좌청룡, 우백호로 S의 크나큰 노후대책이었다.  


드디어 S의 이야기를 듣다가 J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 노후대책은 잘 돼가?’

‘아니 카메라를 가지고 이제는 하루 종일 못 놀아. 그래도 반나절 정도는 놀 수 있을 것 같고 가야금 산조도 자랑할 정도는 아니야’


가야금 산조는 진양조라는 느린 곡조로 시작해서는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면서 점점 빨라지다가 휘모리로 넘어가면 휘몰아치듯이 고조된다. 쌍튕김 기법은 휘몰아칠 때 사용되는 주법인데 S는 쌍튕김 기법이 잘못돼서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속상해 했다.

 ‘야 !그래도 절반의 성공인데 뭐...노후대책 되겠네’ HJ가 S를 토닥거려준다. S의 장황한 덕질 노후대책이 끝을 맺자 곧이어 H가 건강으로 화제를 옮겨갔다. ‘아무래도 말이야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오늘 밤 셋의 수다는 쉽게 끝나지 않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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