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예윤 Jan 21. 2022

재즈피아노 일기 #3

한 때 피아노는 꿈이었다. 7살 무렵 남들보다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을 때, 작은 손으로 뚱땅뚱땅 피아노를 치는 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8살 때쯤엔 진부한 구성으로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엄마가 클래식을 좋아해서 내가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소나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연주할 때면 옆에서 꼭 듣고 계셨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신기했고, 위로가 됐고, 감동적이었다. 피아노를 5년 남짓 배우면서 남들보다 빨리 터득했고 많은 곡을 섭렵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피아노를 전공할까 싶어서 조금 더 엄하고 시간당 레슨비가 더 비싼 선생님과 치게 된 후로는 포도송이 혹은 사과알의 세계를 벗어나 '연주'를 아름답게 할 수 있어야 했고, 나는 프로 음악인의 세계로의 입문은 조금 어렵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때 피아노의 꿈을 접었다. 하긴 뭔가 직업적 의식을 가지기엔 너무 어린 시기이기도 했다. 마침 공부를 잘하기도 했기 때문에 피아노 레슨은 그렇게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제일 좋아했던 밴드인 네스티요나의 곡 중에서도 피아노 연주곡인 to my grandfather를 제일 좋아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a child is born 연주를 들으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가끔씩 피아노를 연주하면 언제나처럼 엄마는 그걸 같이 들어줬으니까. 피아노는 그렇게 내게 가장 친숙한 악기여서 나는 어떤 음을 들어도 무슨 음인지 바로 알 수 있었고 그 둥근 소리는 벨벳처럼 내 마음에 조용히 깔리곤 했다.

 그리고 현업이 바빠 피아노를 완전 놓고 산 지 수 년, 재즈를 들은 지는 십 여 년. 망설이며 재즈아카데미 앞까지 갔다가 그만두기를 여러 번 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고, 이번 9월은 재즈피아노를 배운 지 1년이 되는 시기이다. 이젠 재즈와 뉴에이지를 포함해 레파토리도 꽤 생겼고 텐션음에 대해서도 배웠고, 보사노바 리듬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가 피아노에게 끌려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함부로 놓지 않고 일년 째 일주일에 한번씩 꼭 레슨을 받으며 재즈와 피아노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재즈에 대해 앞으로도 알아야 할 게 태산일 만큼 재즈의 세계는 넓고 깊다. 하지만 이렇게 윤지쌤과 오년 십년 하다보면 같은 beautiful love라 하더라도 조금 더 아름다운 보이싱으로, 조금 더 긴장감 있는 음들로 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듬더듬 읽던 악보를 이젠 빠르고 적절한 템포로 칠 수 있게 된 것처럼.

 더 이상 거창한 야망이 아니고 생활에 가깝지만, 피아노는 내게 아직도 꿈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상상하기 어려운 삶의 시기에도 손 끝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꿈. 연마하고 연구하면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꿈. 슬픔과 씩씩함과 아이러니를 어쩌면 음악으로 표현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꿈. 피아노는 그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악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재즈피아노 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