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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Jun 12. 2020

우리 동네 고인물

없어진 것, 그대로인 것, 새로 생긴 것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 지금의 동네로 이사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같은 동네의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적도 없고 한결 같이 같은 아파트 같은 동호수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한 평생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말이다. 나보다 더 오래 살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한 평생 이 동네에서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우리 동네 고인물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3번이나 겪었으니 없어지거나, 그대로거나, 새로 생긴 동네의 모습들이 있다.


집 열쇠 - 없어진 것


 현관문을 도어락으로 바꾸기  우리 가족은 개인별 열쇠가 있었다. 우리는 열쇠를 각기 다른 열쇠고리로 구분했다.  열쇠에는 조그마한 펭귄 인형이 달려 있었고 인형 눈깔은  개가  빠진 상태였다. 누군가 열쇠를 까먹고  가져  날에는 집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이 경비 아저씨에게 열쇠를 맡기곤 했다. 항상 정신머리 없게 열쇠를 두고 다니는 애는 주로 나였고 그래서 경비 아저씨를 자주 찾는 애도 주로 나였다.


하굣길에 항상 경비 아저씨를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때의 경비 아저씨는 순찰을 아주 자주 다니는 부지런한 분이셨기에 경비실에 아저씨가 앉아 계신 날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아저씨를 찾느라 아파트를 몇 바퀴씩 돌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열쇠요 열쇠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도 많았다. 어린 나는 아저씨 옆에서 항상 조잘조잘 아저씨 엄청 기다렸잖아요 어디가셨었어요 라는 불평을 했다. 니가 열쇠를 잘 챙기고 다니면 될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열쇠를 맡기고 찾느라 나는 경비 아저씨와 대화하는 일이 많았다. 아저씨와 나는 서로 요구르트를 받아먹기도 주기도 했다. 하굣길 경비 아저씨가 멀리서 오고 있는 나에게 엑스자를 보여주면 그날은 아무도 열쇠를 맡기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그건 우리 집에 누군가 있다는 소리였다. 나름 아저씨와 나만의 사인이었다.


그때 그 경비 아저씨는 이제 그만두신 지 오래고 도어락으로 바꾸고 나서는 지금의 경비 아저씨와는 대화를 할 기회도 별로 없다. 지나가다 인사를 드리긴 하지만 그것조차 안 할 때도 많다. 사라지는 대화만큼 동네가 혹은 그냥 내가 삭막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눈깔 없는 펭귄 인형이 달린 열쇠 뭉치와 그때의 경비 아저씨가 그립다.


안경점 아저씨 - 그대로인 것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때부터 지금껏 다니고 있는 안경점으로 혼자 안경을 맞추러 갔다. 그리고 20살부터는 안경 대신 소프트 렌즈를 사느라 많이도 들락날락했다. 안경점은 오래전부터 지금껏 그대로다. 인테리어 하나 바뀐 게 없는데 항상 새것처럼 깨끗하다. 바뀐 게 있다면 예전에는 안경사 아저씨가 두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한 분이 남아 운영을 하신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주인아저씨는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한석규를 닮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정말 많이. 나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어렸을 때 인기가 진짜 많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부터 다녔으니 아저씨도 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저씨는 내 이름 뒤에 ‘씨’ 자를 붙여 나를 ‘이도씨’라 부른다. 그럴 때마다 나도 어른이라는 걸 새삼 징그럽게 실감한다.


얼마 전에는 눈 보호를 위해 전자파 차단 안경을 새로 맞추러 오랜만에 안경점을 찾았다. 아저씨는 이도씨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에요 라는 인사로 나를 반갑게 맞았다. 아저씨는 항상 내 얼굴에 꼭 맞는 안경을 1초 만에 추천해줘서 별로 고민할 게 없다. 나는 항상 아저씨가 추천해주는 안경테를 고르고 안경이 준비되는 동안 아저씨랑 수다를 떤다.


이번에 아저씨는 나에게 주변 친구들이 많이 결혼했는지 묻더니 결혼은 늦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말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면 나이가 찼다고 해서 그냥 아무나랑 결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여러 번 말하길래 나는 대꾸를 하다가 대뜸 아저씨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물었고 아저씨는 손사래를 대차게 쳤다. 아니 아니.


아저씨는 내 얼굴에 맞게 안경다리와 코까지 세심하게 조정해 줬다. 그래, 이도씨 회사에서는 계속 컴퓨터만 보고 있는데 이런 거 써주는 게 좋아. 맨날 렌즈 끼니까 눈을 잘 보호해야 해요. 나는 안경점 아저씨의 이런 오지랖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아저씨한테 말하지 못했다. 나 라식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이제 렌즈도 안경도 안 낀다고.


명절날 가득히 찬 아파트 주차장 - 새로 생긴 것


우리 동네 평균 연령이 높아진 것을 체감할 때가 있는데 바로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날이다. 명절 주간이 되면 부모님을 찾아뵙는 자식들의 차량 행진이 이어진다. 그런 날은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다. 보이지 않던 3자리 번호판으로 시작되는 새 차들이나 외제 차들이 줄을 잇는다. 그럴 때마다 혹시 나 지금 실버타운에 살고 있는 건가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 친구들이 많이 사라졌다.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은 이미 동네를 떠난 지 오래지만 그들의 부모님들은 아직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드린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동창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지금 결혼을 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지금은 둘째를 임신 중이다.


아주머니는 내 동창의 아기를 안고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다. 너무 답답해서 아파트 단지 앞까지 나오신 모양이다. 나를 보더니 이도야 너무 오랜만이다 몰라 보겠어 라고 품 안의 아기를 둥둥거리며 인사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는 마스크를 낀 채 아기한테 가깝게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안녕하세요 아 아기 너무 예뻐요 라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애 키우느라 골병이 들고 있다 말했다. 그러니 결혼은 안 하는 것도 좋고 혹시 결혼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웃기기도 약간 슬프기도 해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고민이었는데 그날따라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출근 전 이곳에 들려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퇴근 후에 아기를 데려간다고 했다. 이제 둘째까지 낳으면 얼마나 또 힘들지 감히 상상하진 않았다.


그 친구도 명절마다 이제 본인이 꾸린 가족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아뵈러 올 거다. 본인의 가족이 생기면 다들 바빠서 부모님을 볼 수 있는 날이 명절과 생일 뿐이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명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아파트 단지를 산책 삼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 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싸줬어 이거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데. 이런 비슷한 말들이 들린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주차장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 짧은 명절 동안 가득했다 다시 한산해진 주차장을 보고 있자면 괜히 나까지 휑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나도 내가 만든 가족을 신경 쓰느라 원래 가족들을 소홀히 하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아직은 이 모든 게 멀게만 느껴지지만 지금의 가족들에게 더 잘해야지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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