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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Jun 24. 2020

침대 밖은 위험하지 않아

큰 기대를 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힘들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던 유학길이었다.


20살에 유학 생활을 시작한 나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타지에서 생활한  2 반이 되던 해에 우울이라는 친구와 지독한 연을 맺었다. 내가    있었던 유일한 세상은 자그마한 나의 침대 위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침대 밖으로  발자국을 내딛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이러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집으로,  방으로,  이불속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태어나기 전으로, 그저 가능한  멀리  깊숙이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에 가야 했다. 죽어도 한국에서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버티자.’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교내 카운슬러였던 A 교수님을 힘겹게 찾아갔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시간 동안 그분 앞에서 울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뭐가 이렇게 힘겹고 서러웠는지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겨우 찾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울었다. 그 날 이후로 난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1년 동안 그분을 찾아갔고, 혼자 때로는 그 분과 함께 울기도 많이 울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침대 밖을 벗어날 힘이 났다. 침대를 벗어나니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용기가 생겼다. 인사를 건네다 보니 ‘아, 이거 별거 아니었네'라는 배짱이 생겼다. 그때부터 내 세상은 넓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마다 교수님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응원을 해주며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응원 덕분에 나는 밖으로 나와 열심히 하루하루를 싸워 나갔다. 수많은 도전들 끝에 나는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동아리 회장도 해보고,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멘토도 되어보고, 학교 홍보 모델도 되어보고, 졸업 땐 졸업생 대표 중 한 명이 되어 나에 대한 인터뷰가 학교 홈페이지에 실리기도 했다. 물론 그 뒤에는 항상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그리고 변화하는 나를 보며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나는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었고 교수님은 자신의 심리 상담 센터를 세우고자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하셨다. 교수님은 나에게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교수님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 내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수업이었지만 나는 항상 그 수업을 기다렸고 한 학기 동안 같은 반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곧 다가올 교수님과의 작별을 천천히 준비했다.

 

수업 마지막 날 우리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교수님을 포함해 모두 함께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 롤링페이퍼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반 친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지난 몇 년 간의 유학생활이 눈앞을 스쳤다. '아 이제 이 생활도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코 끝이 순간 찌릿했다. 다 읽어 내려가니 롤링 페이퍼 끝 부분에 너무나 익숙한 교수님의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난 그날 집에 돌아가던 그 길에서 다시 한번 어린아이처럼 울었는데 그때는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서가 아니라 지난 몇 년을 버텨낸 내가 대견해서 울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평범한 회사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따금씩 사는 게 고단할 때마다 우울이란 친구는 아직도 나를 찾아온다. 그것도 친구라고 미운 정이 들었는지 가끔은 “어, 왔니?”라는 마음으로 며칠을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왜 또 왔니?”라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혼을 내가며 쫓아내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아마 죽을 때까지 반복되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어려움이 다시는 날 침대에 가둘 수 없다는 걸.

침대 밖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걸.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 사람이 피 하나 섞여 있지 않은 남일 때는 더더욱. 인생의 끝이라고 느꼈던 그때의 그 시절을 아름답게 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지금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도 다 교수님의 덕이다. 그 날 롤링 페이퍼에 적혀 있었던 교수님의 말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You are my role model.”

(너는 나의 롤모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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