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1세의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통치에 핵심이었던 통화 체계
크로이소스는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546년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리디아의 마지막 왕입니다. 이 ‘크로이소스’의 이름이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에서 ‘부자’와 동의어가 되었는데요.
현대 유럽계 언어에서 ‘크로이소스’는 큰 부자의 대명사이고, 영어에서는 ‘크로이소스만큼이나 부유한(rich as Croesus)’과 같은 관용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크로이소스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화폐의 속성도 알아보겠습니다.
돈은 교환을 위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곡물, 가축 등 다양한 것이 돈의 기능을 했죠.
그러다 금, 은 등 금속의 덩어리를 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세계 최초의 주화를 기원전 7세기에 발명된 리디아 금화로 보고 있는데요. ‘리디아의 사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리디아는 현재 터키 서부 지역인 아나톨리아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입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금과 은을 화폐로 주조해 소매 거래에 사용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리디아에서 금과 은을 혼합한 일렉트럼을 돈으로 사용했는데요. 처음에는 무게가 제각각이라 불편했다고 합니다.
이에 크로이소스 왕이 무게가 같고 품질이 균일한 금화와 은화를 발행했습니다. 거래할 때마다 무게와 품질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개수만 세면 되게 만들었죠. 그리고 왕이 주화를 측정하고 보증했고요.
사용하기 편리하니 인기 있었겠죠. 크로이소스 왕은 덩어리일 때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주화를 판매해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리스의 7현인 중 한 명인 솔론이 리디아의 수도 사르데스를 방문했을 때 크로이소스 왕이 막대한 부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내용이 있습니다. 돈을 발행함으로써 얻은 주화 발행 이익인데요.
화폐의 액면가에서 제조 비용을 뺀 화폐 주조 차익을 ‘시뇨리지’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의 봉건 영주 ‘시뇨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인데요.
당시 조폐 발행 권한을 갖고 있던 영주가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금화와 은화에 불순물을 섞어 액면가보다 실제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를 만들고 이익을 남겼습니다.
크로이소스 왕도 이 ‘시뇨리지’로 부를 쌓았던 거죠.
리디아는 결국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멸망하지만 리디아의 주화 유통 체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치에 활용됩니다.
통화는 유통화폐의 준말인데요.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정함으로써 영토 내에서 유통 수단이나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입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전성기에 올려놓은 다리우스 1세는 금화와 은화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통화 체계를 도입했는데요. 금은복본위제라고 하죠. 이 통화 체계로 각 지역에서 공물을 받았습니다.
사트라피라고 부르는 20개의 주를 설치해 각각에 총독 개념인 사트라프를 파견했습니다. 사트라프들은 중앙 정부에 바쳐야 할 세금을 할당받았는데요.
다리우스 1세는 세금으로 주화의 원료인 금과 은을 징수했습니다.
은덩어리는 리디아에 보내 주화로 만들어 통화로 활용했는데요. 징수한 은이 연간 37만 7000킬로그램에 달했다고 합니다.
앞서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의 사례와 같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화 체계는 왕에게 화폐 주조 수익을 안겨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를 들어 발행 비용이 1,000원이지만 백성들에게 “이 주화가 5만원의 가치를 하니 그렇게 알고 사용하라”고 해서 백성들이 사용하게 되면 엄청난 재산이 쌓였겠죠?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와 페르세폴리스에 건설 계획을 추진했고, 홍해와 나일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도 지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건설 공사들이 다 돈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겠죠.
역사 속 두 가지 사례로 돈의 부의 증식과 통치의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알아봤는데요. 유익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되신다면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더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