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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Dec 09. 2021

죽음을 바라 보는 마음

 

석 달 새 네 번의 부고를 받았다. 


 나이 들면서 겪어야 하는 나쁜 일 중 하나가 바로 잦은 부고지만 그래도 정말 심했다.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후배 시어머니 부고는 갑작스럽긴 해도 (바로 얼마 전까지 후배의 시집살이 하소연을 들었으니) 그나마 그러려니 했는데 잇따라 받은 소식들은 이게 웬일이야,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무슨 말이야, 걔가 왜? 이게 뭔 일이라니' 하는 내 말에 '그러게. 그러게'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친구, 느닷없이 스물 중반의 조카를 잃은 친구의 흐느낌에 위로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안부를 물어야 하나, 위로랍시고 하는 전화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기만 들고 전전긍긍하던 며칠 뒤 점심을 먹던 참에 남편과 동갑이었던 시동생 뻘의 친척 부고가 전해져 왔다. 


 결혼하고 나이 들어서는 그저 집안 행사 때 얼굴 보거나 소식을 전해 듣는 사이였지만 남편이 어릴 적에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학교도 같이 다녀 아주 가까웠다고 한다. 결혼 후 서로 얼굴 보고 말이라도 나눈 건 두세 번에 불과해 나는 그 가족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고 서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고 사는 모양도 우리랑 점점 달라져 마음으로도 거리가 있었다. 친척들 사이에서 언뜻 사는 이야기가 오갈 때면 그닥 좋은 평이 나오질 않아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얼결에 들은 부고에 놀란 남편이 전화로 알아보니 지난 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고 했다. 평소 크게 아픈 곳도 없었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심장마비라니. 참 사람 사는 게 이리 허망한가, 나이 든다는 게 이런 소식을 수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나? 먹던 점심 수저를 놓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네~ 하는 요즘 우리 단골 레퍼토리를 되풀이했다. 


 상가가 차려진 지방 병원으로 내려가려고 잡혀 있던 오후 스케줄을 바꾸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남편이 좀 난처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고인이 사업을 하며 박한 평을 들어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우리 시집에도 금전적으로 작은 손해를 입힌 모양이었다. 조의금 안 해도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남편은 가족들더러 다들 원하는 대로 하라 했지만 우린 그럴 수 없지 하길래 당연하지 하고 말았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과 가족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살아 있을 때 마음을 넉넉하게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야 있지만 이리 허망하게 세상을 달리하게 될 줄 서로 몰랐잖은가.


 장례를 잘 치렀다는 소식과 느닷없이 남편을 잃은 동서가 너무 애통해해 보기 딱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내내 곁에 같이 살던 남편을 잃은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나보다 두어 살 위였으니 이제 아이들 독립시키고 내외간만 남을 시긴데 참 힘들겠다 싶었는데 친척들 간에 이런저런 전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안타까움과 삶의 허망함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전화는 점차 고인과 고인 가족에 대한 작은 험담으로 번저가는 모양이었다. 사업하느라 돈만 너무 밝히더라, 잘 버니 사람을 가리더라, 그 집 며느리 콧대가 높고 건방졌다 등등.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인가 가려내느라 신경이 쓰였는데 점차 시집 어른들까지 한 수 거드는 이 뒷담화가 몹시 불편해졌다. 물론 나도 그 집 사람들의 마음새에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아니고 이제 와서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겠지 하는 기대와 달리 아침저녁 울려대는 휴대폰에 질려 남편에게 앞으로 내게 오는 전화는 좀 가려 받겠다고, 시집 식구들 전화 안 받는다고 섭섭해 말라고 하니까 그 양반들이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리 까지 하냐길래 결국 속에 있던 얘길 했다. 내 동생이 먼저 갔을 때도 친척들이 그랬을까 마음이 쓰여서~라고. 내 엄마 흉을 보고 내 동생 흉을 보고 내 흉을 보며 이러더니 저러더니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라고. 


 착하고 바르게만 살았던 동생이지만 남들 눈에 어찌 보였을까.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일로 다른 친척들에 비해 조금 여유 있게 살았던 우리 친정이 행여 주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진 않았을까, 장레미사 때, 자기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던 사촌동생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그리 슬퍼했던 걸까? 삼 년 전 동생을 잃은 나는 자꾸 사람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다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요즘 손에 꼽히게 핫한 배우인 윤여정 씨가 어느 방송에 나와하는 얘길 들었다. '오래 살아야 해. 죽으면 지는 거야' 생활비 버느라 다시 복귀한 연예 생활에서 갖은 설움을 겪었다는 노배우가 하는 이 한마디가 마음에 와 박혔었다. 죽으면 지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 처제 두고 누가~" 손을 저으며 돌아 서는 남편에게 한 소리 더 했다. "그 집 할아버지 제사 소홀해서 그리 됐나 보다 했던 사람들 좀 웃겨, 그럼 우리 집은 제사 잘 모셔 다행이다 생각하나 본데 그 제사 누가 다 준비해? 자기네들은 숟가락 하나 안 올리고 나 혼자 다 하는데 그런 소리하면 안 되지"



 이 글을 올리려고 손 보던 중 또 부고를 받았다. 혼자된 제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남편과 올케랑 멀리까지 문상 다녀 오면서 원래대로 라면 거기 서 있었을 동생 생각에 가슴이 사무쳤다. 상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던 조카 등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도 그저 쓸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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