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가면 이런 풍경을 만난다.
밥할 생각도 잊은 체 마냥 바라만 보고 있다가 뒤따라 나오는 남편에게 정말 좋지 진짜 좋지 하고 박자를 맞춰달라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어 그러네".
끝.
이 집에 이사 온 지 이십 년이 되었다. 높은 층에서만 살다가 처음 낮은 곳으로 이사 온 터라 햇빛도 덜하고 좀 어두운 느낌에 몇 달 힘들었다. 난 원래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한다. (대신 일단 낯을 익히고 나면 뿌리를 뽑는다) 그래도 앞 베란다에선 쓰레기 버리러 가는 사람, 주차장 내려가는 사람 등등 사람 구경이 재미있었고 뒷베란다 쪽은 그야말로 바깥이라 출퇴근하는 사람들, 오가는 버스가 보여 아주 신기했다.
몇 년 지나자 1층 높이에 있던 울타리 나무들이 점점 커 올라왔다. 언젠가 저 녀석들이 우리 집 창가까지 자라면 참 좋겠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세월이 좀 더 지나면서 저 나뭇가지를 잡고 악수할 수 있었으면 하는 구체적인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조경관리를 어찌나 잘하는지 (잘한다고 생각해야겠지?) 나무가 좀 클만하면 가지를 쳐버리고 또 손에 닿겠다 싶음 전기톱이 등장해 번번이 기회가 무산됐다. 그러다가 드디어 5년 전쯤 가까스로 창 너머 푸른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손에 잡았다. 당시 호프 자런의 나무이야기가 담긴 <랩 걸>을 감명 깊게 읽고 있던 때라 감격이 더 했다. 그냥 잡기는 멀어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의 흐름에 박자를 맞추다 휘청 내 쪽으로 다가올 때 얼른 잡으면 생각보다 생기 없이 바싹 마른 줄기여서 어? 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나 혼자 매번 좋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까치가 한 쌍 와서 집을 지었다. 두 녀석이 경쟁하듯 나뭇가지를 물고 와 여기저기 틈새에 밀어 넣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 뒷베란다에서 일을 할 때는 놀래키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나뭇가지 집이 완성되고 한 철이 지나니 재미있게도 이 까치들이 옆 가지까지 집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도 신기해 남편이랑 쟤네들 그새 새끼 다 키워 분가시키나 보네, 우리보다 형편이 좋아 하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동 나갔다 들어온 남편이 흥분해 말했다. 뒷베란다 쪽 나뭇가지를 베어내고 있다며 저 까치집을 어떻게 할 거냐고. 놀라서 내다보니 저 멀리서 윙윙 거리는 전기톱 소리가 들렸다. 어김없이 또 가지치기를 시작한 모양. 남편이 얼른 관리실에 전화를 해 상황을 묻더니 하는 말,
"~~ 우리 집 뒤 까치들이 정말 정성껏 집을 지었거든요, 그걸 잘라 버리는 건 너무 한 거예요. 안타까워 볼 수가 없으니 자르지 마세요"
좀 많이 웃겼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거나 계단참에서 누가 담배를 핀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도 관리실에 전화 좀 하지 할 뿐 절대 나서는 법이 없던 사람이 저런 필사적이고 절박한 사정을 늘어놓다니. 참네~~
그에 비해 행동파인 나는 얼른 뛰어 나가 전기톱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기다란 사다리 위에서 현란한 톱질을 하는 아저씨를 기다려 잠시 멈췄을 때 우리 동은 자르지 마셨으면 한다 했더니 주민들이 창밖이 어둡다고 잘라달라 한다는 거다. 아니, 남쪽도 아니고 북쪽 창으로 무슨 햇빛이 들어온다고, 북쪽은 오히려 막아야 찬바람이 덜하지. 할 수 없이 우리 층을 알려드리고 그쪽에 까치집이 있으니 그건 제발 남겨주십사 부탁을 했다.
우리 부탁에 다른 곳에 비하면 훨씬 나무가 덜 잘려 나갔지만 그럼에도 위 사진처럼 집쪽으로 뻗은 앞쪽 가지가 댕겅 흰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까치는 자기 집이 바깥으로 너무 드러났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얼쩡거리다 없어져 버렸다. 제 몸집보다 긴 가지를 물고 다니며 그리 정성껏 장만한 집이었는데. 에휴~~ 거기다가 나뭇가지도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시 멀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훨 무성한 가지가 남았고 여름 내내 푸른 잎 속에 호강을 하다 가을이 오자 불타는 황금빛 창으로 호사를 누린다.
글을 올리려는 오늘 아침엔 비가 왔다. 어제 들은 비 소식에 아유 저 단풍 아까워 어쩌나 하고 속상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생각보다 잎사귀들이 잘 견뎌줬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통 붉고 노란 단풍잎이다.
서울이 삭막한 도시라 하지만 이만한 풍경을 어디 가서 만나랴. 마음이 흡족할 만큼은 아니라도 이 정도 건졌으니 그때 나뭇가지 자르지 말아 주세요 부탁하기 참 잘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