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랑 마님 아니 사월이 출연
전기 프라이팬 위 새우전이 분홍색으로 예쁘게 익어가고 있었다. 괜히 켕겼는지 일 벌여놓은 뒷베란다로 얼굴을 내민다. 차마 말은 못 하고 팬에서 눈을 떼지 못하길래 모양이 흐트러진 새우전을 한쪽 건네줬다.
"자, 먹어봐"
그야말로 꿀떡 해치우더니
"마님~~ 고맙습니다요" 한다.
"그렇게 말하니 질서가 잡히는 것 같네. 세상이 바뀌어 이러고 사는 거지 조선시대 같았어봐"
"그러게 말입니다요, 마님~~"
익은 전을 뒤집어 놓다가 생각하니 좀 이상하다.
"그런데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네? 마님이 아니잖아?
양반집 마님이면 안방에 앉아 '얘 사월아 전 태우지 말고 제대로 부쳐라~' 뭐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마님이 쭈그리고 앉아 일이나 하고 있고"
"그럼 버전을 바꾸지 뭐. '사월아 전 하나만 더 주라' 이래야지. 그러다가 마님한테 한 소리 듣고, '돌쇠 이놈아 너 얼른 나무하러 안 가냐? 사월이 곁에 얼쩡거리지 말고' 이렇게"
"그러다 사월이도 욕먹겠네, '이년, 어디서 돌쇠랑 시시덕 거리는 게냐? 똑바로 일 못할까?' 뭐 이렇게?"
여기까지 하고는 남편과 한참 깔깔거렸다. 남편 집안은 중인 출신이고 내 친가는 뼛속까지 양반이라고 평소 족보 정리(?)한 덕에 종종 되풀이하는 역할극이다.
명절이라 주부들 등골이 휘지만 비교적 단출하게 지내는 덕에 별 불평 안 하고 음식 준비를 한다. 7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바로 어머님은 제사를 나더러 맡아 하라셨다. 속으로 '헉' 싶었지만 일 싫어하시는 어머님 성향은 차치하고도 어차피 내가 맡아야 할 일, 서울 부산으로 오르내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하는 게 편하겠다 생각했다.
천주교인이니 천주교식으로 하고 당연히 음식에 가리는 것 없이 너 원하는 대로 준비하라시길래 어머님이 꼭 올렸으면 하는 음식이 있으시냐 했더니 그런 건 없고 딱 하나 정성껏 하라신다. 몇 년 동안 해보니 그게 제일 힘든 주문이었다. 때때로 힘들고 꾀가 나 에이~~ 싶다가도 시어머님 '딱 정성 하나'에 꿀꺽 침을 삼킨다.
남편에게 아버지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존재였다. 결혼하기 전 이런 상황을 알았더라면 오래 고민했을 것 같다. 차라리 없었으면 했다는 아버지 존재.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존재. 평생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가져다준 적이 없이 두툼한 돈다발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매일 술로 탕진한 걸로도 모자라 한 밤중에 주사로 가족을 힘들게 하셨단다.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고 (시어머니가 거기 반하셨다고) 아흔이 넘도록 뛸 정도로 건강하셔 모르는 사람들은 젠틀맨이라고 불렀다고. 주사로 행패 부리다 파출소에 잡혀 계시면 장남인 남편이 학교 체육복을 입은 채로 가서 업어 와야 했는데 그때 뒤통수로 들었던 "아이구, 저런 애비 밑에 저리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네"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했다. (내가 결혼한 즈음엔 이미 나이가 드셔서 이런 심한 주사는 없었지만 몇 번 아슬했던 적이 있었고 내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더 불평을 못한다. 그 아버지 제사를 모셔야 하는 남편의 복잡한 마음을 건드릴 수가 없으니. 언젠가 아버지 사진을 안 놓고 제사 모셨으면 하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생전에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었던 아버지 얼굴 보는 게 편치 않단다. 내게도 좋은 기억이 없는 시아버지 제사라 "대충 해, 기본적인 것만 해" 하는 말로 미안함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이왕 하는 것, 그럴 수도 없고 이젠 조금 늙어버린 내외가 소꿉놀이로 분위기를 풀어가며 명절 준비를 한다.
서둘러 끝내고 나니 세 시, 이 시간만 기다렸지롱 하며 남편더러 이제 청소하고 방 닦아! 했더니 완전 뒤통수 맞은 얼굴이다. 엊그제 음식 준비는 몽땅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청소기 돌리고 방 닦을래? 하고 협상을 했던 걸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아침 내내 방에 들어가 유튜브 보면서 놀다가 전 한쪽씩 얻어먹을 땐 무슨 생각을 한 걸까? ㅋㅋㅋ
난 탕에 뜨거운 물 받아 근육을 풀었다. 노골노골 몸이 느긋해졌다. 바깥에서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들으니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