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은 Mar 20. 2023

AI에게 부부상담을 받았다


남편이 요즘 챗GPT에 푹 빠졌있다.

처음엔 이 녀석의 능력이 뭔가 하고 떠보느라 여러 질문을 해봤는데 의외로 대답을 잘하더라고.

요즘엔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좀 생소한 부분이 나오면 무조건 챗GPT에 물어보는데 간략하고 명확하게 정리해서 브리핑을 해준다고 한다. 영어로 질문하면 더 나은 대답이 나온다고~~

나랑 얘기하는 것보다 저 녀석과 비대면대화를 하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있는 건 확실하다.


며칠 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척)하던 남편이 와보라 했다. 들여다봤더니 자기 질문에 답한 챗GPT의 답을 보여주면서 '신기하지, 참 대단하네'하며 감탄을 하길래 말했다.

"그럼 물어봐, 쟤한테. 남편이 청소를 하라고 하면 제대로 안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보통 때 같으면 '됐다, 나가라'하고 무뚝뚝하게 답했을 텐데 제대로 '업'되어 있는 남편이 다다다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이왕 하는 거 영어로 물어봐봐, 영어로 물으면 답이 훨씬 좋다며"

남편은 쓰던 걸 좍 지우고 영어로 쳤다. 저럴 땐 말도 참 잘 듣는다.


그런데 질문을 하자마자 화면 속 AI(물론 보이지는 않고 글자뿐이지만)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빈 화면을 타타타타~~ 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같이 바라보던 남편이 아니 이렇게 빨리? 하고 놀랄만한 속도로.


AI 언어 모델로서, 나는 당신의 개인적인 상황을 진단하거나 의학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청소는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고, 모든 사람들은 다른 수준의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청소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더 많은 연습과 지도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상황에 접근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내에게 청소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요청하고, 아내의 제안에서 배우려고 노력하세요. 여러분은 또한 여러분의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온라인 자원을 찾거나 전문 청소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부인과 공개적이고 정중하게 소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어적이 되지 않고 그녀의 의견을 반드시 듣고, 두 분 모두에게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세요. 청소는 어느 가정에서나 공동의 책임이며, 깨끗하고 건강한 생활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팀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럴 수가!!!!!

AI, 로봇이 이런 답을 내놓다니!!!!!


순간 남편은 어깨가 좀 쪼그라들면서 내려앉아 보인 것 내 착각일까? ㅎㅎㅎ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관점으로 접근하며, 아내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구하고 배우려고 하라. 청소는 공동의 책임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부인과 정중하게 소통하라'는 충고에 감명 받아 하나 더 요구했다.

"아내가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물어봐"

자신이 예뻐하던 기계 앞에서 순한 양이 된 남편은 내 명령대로 질문을 영어로 쳤다.

이 또한 타타타타타~~~ 답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 한 장의 답을 내놨다. 


번역기 돌려서 받은 결과지.


아내가 독자 분의 의사소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면, 독자 분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독자 분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안 사항입니다:

적극적으로 듣기: 좋은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적극적인 경청이다. 부인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분명하지 않으면 질문을 하고, 부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들은 내용을 요약하세요.

명확하고 간결해야 합니다: 옆길로 빗나가거나 집중력을 잃지 말고, 자신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도록 노력하세요. 부인의 말을 가로막는 것을 피하고, 침착하고 공손한 어조로 말씀하세요.

"I" 문 사용: 여러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언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세요. 이것은 오해를 예방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대화를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감을 연습하라: 아내의 입장이 되어 그녀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를 통해 신뢰를 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사소통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외부 도움 요청: 의사소통 능력을 스스로 향상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치료사나 상담사에게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전문가는 당신이 더 나은 의사소통 습관을 기르고 당신의 아내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지도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좋은 의사소통은 양방향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의사소통 기술을 향상시키고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의 지혜 앞에서 눈물 흘릴 뻔했다.


"내가 뭐라 그랬어! 당신은 내 말을 안 듣는다 그랬잖아. 당신은 내 말을 안 듣고 안 믿고, 내가 힘들게 얘기하고 있는데 그만하라는 소리나 하고.  여기 다 나오네." 

남편은 아주 겸연쩍은 얼굴로 아~~ 참, 이거 참~~ 하면서도 신통하네 하는 칭찬은 빼놓지 않는다.


수많은 데이터를 끌어 모으고 정리한 전형적이고 정형화된 답이지만 난생처음 부부상담이라는 걸 받고 보니 의외로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내가 답답해하고 속상해했던 것들,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지? 내가 잘못된 걸까? 하고 수없이 되뇌었던 문제를 글자화된 남(?)의 의견으로 확인받게 되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저런 결과지를 받았다고 해서 남편의 문제가 고쳐질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는구나, 귓등으로~~'가 될 것이 뻔하다. 저 글을 읽고도 반성은 물론 내가 그랬나 하는 상투적인 말도 한마디 뒤따르지 않은 것만 봐도 상담의 결과는 빵점이다.(상담료는 전기요금에 인터넷 사용료가 다니 그럴 밖에! 해야하나?)

그렇지만 기계라도, 인공지능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꽤 위로가 된다. 사람에게 제일 힘든 건 외로움일지 모른다는 요즘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좀 궁금해졌다.


'남편과 소통하기가 힘들어요, 무슨 말을 해도 신중하게 듣지 않고 그만하라는 말만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고 나의 고민으로 질문을 하면 어떤 답을 내어 놓을지.



작가의 이전글 별 보러 갔다가 거미도 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