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은 May 06. 2023

엄마 아들도
종이로 만들지 않았습니다요



일기예보가 딱 들어맞게 연휴 첫날인 어린이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아파트 안에 사시는데 비가 온다 한들 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 버리러라도 나가지 마시라고 거들 말이 생긴 셈이니 꼭 전화를 한다.


-엄마, 비 오네. 

-그래 그렇구나. 준엽이네는 아직 안 온 거지? 오늘 오는 날 맞지?

-응, 오늘 오는데 몇 신지는 몰라.

-에구 비가 오는데.

-어차피 공항에서 지하철 타면 바로 집 앞에 내리는데 뭘.

-그래도 비 맞잖냐. 

-헐~~~


남동생 내외는 영국이랑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 엄마 말대로 '애비(울 아빠)를 닮아 역마살이 단단히 껴서' 걸핏하면 비행기 타고 나가더니 코로나로 묶여 오래 참았다. 오늘 들어온다는데 비가 온다고 끌탕을 하시는 중이다. 


-엄마, 걔가 낼모레면 육십이유, 뭔 비 걱정을 하고 있어?

-자식 키우는 엄마 마음이 그런 거다.


뭘 알려드리면 매번 새카맣게 잊어버리고는 말 안 해줬다고 우기시면서 아들 열 이틀 여행하고 돌아오는 날은 어찌 다 기억하고 걱정을 하시는지. 내심 너 우산 좀 갖고 나가 집까지 데려다줘라 하고 싶으신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내 혀 차는 소리에 에미 마음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길래 지겨워 이만 끊자 했다.


이십 년 전 남동생 가족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첫 출근하는 날 비가 내렸다. 우리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동생네는 지하철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아침 일찍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미국서 살림 짐도 안 와 집에 우산이 없을 텐데 출근하는데 비 맞아 어찌하냐는 얘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걔가 어린애도 아니고 우산을 사서 가든 비 맞고 가든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가 퉁명을 부리니 에미니까 걱정이 되지 하는 말에 원망이 섞여 있었다. 그제서야 아침부터 전화한 이유를 알았다.


난 그때 미국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서 간 여동생 차를 대신 쓰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빌려달래서 줬다가 도로 뺐은 참이었다. 어찌나 차를 더럽게 쓰던지 차 안에 종류별로 음료수 남은 통이며 쓰레기가 가득해 차 열쇠 도로 내놔해서 돌려받았다. 그게 못마땅해 아침부터 전화를 해 원망을 늘어놓으신 게다. '네가 차만 안 뺐었으면 차 타고 비 안 맞고 편안히 출근했을 텐데, 기갈 쎈 것이 동생 차 좀 쓰게 두지~~ 지는 집에서 놀아 차도 필요 없으면서' 이게 엄마가 못 한 말이었겠지.


이십 년이 지나도, 아들이 쉰 후반을 지나는데도 정작 당사자가 반가워하지도 않을 관심에 저리 마음을 쏟으시니.  


사실 그때나 지금에나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 


내 아이가 막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우리 집에 계셨는데 비가 왔다. 학교 끝나는 시간 맞춰 우산을 갖고 나가느라 일어섰더니 그때 하신 말씀 "애 종이로 안 만들었다. 비 좀 맞음 어때. 뭘 그리 종종걸음이냐" 


오늘 저녁 다 모여 밥을 먹는다. 어버이날이 평일이라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어 미리 모여 축하하는 자리.

그래서 오늘도 그날 얘기는 안 하겠지만 속이 꼬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여기서 해야지.


엄마, 엄마 아들도 종이로 안 만들었기는 매일반이거든. 그냥 비 좀 맞아도 안 쪼그라들어. 칫!



작가의 이전글 AI에게 부부상담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