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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Apr 06. 2023

꿈을 이야기하던
너에게서 끝없는 바다를 봤어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눈은 참 똘망똘망했다. 그것 외에 연락처, 생김새, 이름 석 자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똘망한 눈을 가졌던 친구는 2011년 9월, 경기도 끝자락에 있는 연천 5사단 훈련소에서 만났다. 같은 생활관에서 지내면서 친해졌고 종종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나는 21살이었고 맨체스터에서 건축과 1학년을 마치고 급하게 입대했다. 학비와 생활비가 많이 들어 부모님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고, 군대도 가야 한다면 차라리 일찍 다녀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훈련병이었던 나의 꿈은 21개월이 눈 깜짝할 만치 빨리 지나가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가 복학하는 것이었다. 삶과 꿈은 맨체스터에 있었고 군대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귀찮은 숙제 같은 것이었다.


현실의 9월 훈련병들은 연천의 혹독한 ‘가울’을 지낸다. 낮에는 가을처럼 쨍한 햇볕에 따뜻했고, 새벽에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겨울의 계절이었다. 밤에는 소위 스키 파카라고 불리는 아주 두껍고 털모자가 달린 국방무늬의 패딩을 입고 1시간 반 동안 야간 경계를 서야 했다. 야간 경계 근무는 훈련병 2명이 짝을 지어 나가는 근무였다. 오늘은 눈이 똘망 똘망한 그 친구와 나가게 되었다. 경계 근무를 나가면 짝과 함께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단, 조교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그날은 새벽 2시쯤 되었을까? 국방무늬 스키 파카를 입고 어깨에는 총을 메고 똘망 똘망한 친구와 함께 위병소로 향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고 깜깜한 하늘의 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밤이었다. 위병소로 걸어가며 하늘의 별을 보고 또 맨체스터에 돌아가 복학하는 생각을 했다. 위병소에 도착한 친구와 나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개 군대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지와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할지, 두 가지로 정해져 있다.


나는 영국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하루빨리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꿈에 대해 말했다. 군대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나의 유학 이력은 매우 특이했고 나는 이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했다. 한참 동안 나의 꿈에 관해 나누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질문했다. 

“너는 나가면 뭐 하고 싶어?”

“나는 붕어빵 장사. 붕어빵 기계 하나 사서 장사 시작하고 싶어.” 나와 다른 꿈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스키 파카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는지 친구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학생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던 이야기, 졸업 후 일찍이 사회에 나가 일하다가 군대에 온 이야기, 붕어빵 장사를 시작으로 요식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까지 모두.


꿈을 말하는 친구의 눈빛은 나는 보았다. 끝없는 바다였다. 바다처럼 깊고 윤슬처럼 빛났다. 똘망똘망 빛나는 눈을 가졌던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붕어빵 장사를 했을까? 식당을 열었을까?

12년이 지난 시점에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를 기억하는 건 온전히 그의 눈빛과 꿈 때문이다. 훈련병 때도, 자대에 들어가서도 많은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짜 꿈을 갖고 이야기하는 친구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꿈이라 여기고 이야기하는 게 대학교 복학이라니. 그 꿈은 내 눈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21살 때 이미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답을 찾았고 그래서 그의 눈이 빛났을 거라 확신한다. 그걸 이루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벅차오르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이제 와서 깨닫는다. 

요즘에 나는 꿈을 꾼다. 살고 싶은 삶이 생겼고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에게 내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의 눈빛은 그때 그 친구처럼 빛이 날까? 바다 같이 깊고 윤슬처럼 빛나는 그 친구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꿈을 가진 사람의 눈빛을.


12년이 지난 시점에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를 기억하는 건 온전히 그의 눈빛과 꿈 때문이다. 훈련병 때도, 자대에 들어가서도 많은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짜 꿈을 갖고 이야기하는 친구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꿈이라 여기고 이야기하는 게 대학교 복학이라니. 그 꿈은 내 눈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21살 때 이미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답을 찾았고 그래서 그의 눈이 빛났을 거라 확신한다. 그걸 이루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벅차오르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이제 와서 깨닫는다. 나는 꿈이 없었는데 친구는 꿈이 있었구나.


요즘에 나는 꿈을 꾼다. 살고 싶은 삶이 생겼고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에게 내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의 눈빛은 그때 그 친구처럼 빛이 날까? 바다 같이 깊고 윤슬처럼 빛나는 그 친구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꿈을 가진 사람의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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