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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Oct 13. 2024

애인이 돈을 먹고 튀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L을 만난 건 내 연애 역사 중 최고의 오점이다. 그때의 나는 제대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줘본 적도 없는 모태솔로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쩌다 나와 L은 커피를 한두 잔 같이 마셨고 무심코 던진 L의 고백을 나는 낼름 삼켜버렸다.


당시의 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L은 다른 지방에 살면서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취준생과 백수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도 나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싶었나 보다(아무래도 특유의 외로움 때문이었겠지). 그런 결핍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L과의 데이트를 기다리게 했고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갔고 배웅했다. 개인주의자에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헌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건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라고 믿었으니까.


나와 L의 백수 상태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기에 한동안은 나름 안정적으로 데이트를 이어 나갔다. 나는 어떻게 모아두었던 돈이 있었는지 L에게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사주고는 했다. 물론 L이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 와주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돈 없는 청춘답게 많은 것을 즐기지 못했다. 보통 동네 천을 걸으며 산책을 하거나 몇 곡 부르지 못할 코인 노래방을 갔다. 나는 카페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두 명이 마실 커피 가격은 만 원에 가까웠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했다. 직업도 돈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L을 만나기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난 뒤 나는 한 건축사사무소 인턴을 하겠다며 무작정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 근처 원룸 자취방을 얻은 나는 서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돈을 벌 생각에 들떠있었다.


인턴을 시작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L을 만나 데이트는 할 수는 없었다. 지방에 살던 L은 서울이 너무 멀다며 올라오기를 꺼려했고 나 또한 인턴사원으로서 회사에 발이 묶여 L을 만나러 내려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L을 만나러 가지 않았고 똑같이 L은 한 번도 내 자취방을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통화를 하거나 카톡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한 번은 L이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어디를 놀러 갔는데 돌아오는 차비가 없어서 딱 5만 원만 보내줄 수 있겠냐고 했다. 나는 순간 이게 맞나 싶었지만 헌신적이고 싶은 나의 썩어버린 고름 같은 결핍은 마다하지 않고 L에게 바로 계좌이체를 해버렸다. 그때 내가 인턴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받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고 50만 원은 월세로, 나머지 50만 원은 생활비로 썼으니 L에게 10분의 1의 생활비를 넘겨준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L에서 5만 원을 갚으라고 넌지시 이야기해보았지만 L은 당장은 돈이 없고 나중에 알바를 해서 갚겠다고 했다. 거짓말일 것 같다는 마음이 속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보같이 L을 믿었고 놓지 못했다.


낮에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고, 저녁에 퇴근 후 집에 오면 L과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싸우기도 하고 싸우다 전화를 끊기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10만 원을 빌려주고. 다시 통화하고 싸우고 빌려줬다.




그렇게 사귄 지 세 달 정도 지났을 무렵 L은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당시 쓰던 오래된 갤럭시는 배터리가 빨리 달아 나와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물론 나도 3년이 넘은 아이폰 5를 보조배터리에 끼워 쓰고 있었으니 나와 별반 다른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L이 직업도 없고 알바도 하지 않으니 그건 힘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L은 기가 막힌 대안을 제안했다. L은 핸드폰을 할부로 구입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부탁이니 명의만 내 앞으로 해놓고 돈은 자신이 지불하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퇴근하고 핸드폰을 사러 SKT 대리점으로 향했다.


휴대폰 대리점에서 L이 원하던 핸드폰 모델을 구입하겠다고 대리점 직원에게 말했다. 대리점 직원은 지금 핸드폰이 있는데 또 사는 거냐라고 답했다. 나는 능청스럽게 지금 폰에서 갈아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할부를 내 이름으로 걸어놓으며 앞으로 휴대폰 단말기 가격 n만원이 매달 청구 된다고 안내를 받았다.

나는 할부로 사버린 핸드폰을 들고 L을 만나러 용산역으로 향했다. L은 나를 보러 서울에 온다고 했다. 물론 그 말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핸드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느꼈지만 어찌 되었든 L이 온다면 아주 오랜만에 밥도 같이 먹고 데이트도 할 수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용산역에 도착했다. 한 손에는 할부로 결제한 핸드폰이 들어있는 흰색 SKT 종이봉투를 쥐고 있었다.


머지않아 약속된 시간에 L이 도착했다. L은 나를 보자마자 내 손에서 종이가방을 가져갔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야 한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플랫폼으로 뛰어갔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L의 마지막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L은 연락두절 상태가 되어버렸고 나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L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XX 당했네.




그 후 나는 24개월 동안 할부금을 갚아야 했다.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알림을 받아 볼 때면 L이 떠올랐다. 내 마음도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럴 때마다 세상 끝까지 추적해서 어떻게든 뜯긴 돈을 돌려받고 싶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던 나는 도를 닦듯 화를 참으며 할부금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헌신적인 모습의 결말은 이렇게 참담한가. 자신의 간과 쓸개를 빼준 사람의 끝은 이렇게 허무한 것일까. 그리고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 뒤로 할부를 갚는 2년 동안 그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다(물론 이건 철저히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그렇게 당하고도 미련하게 사랑은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할부가 끝나고 머지않아 좋은 쪽에 속하는 사람을 만났다. 언제나 사랑받고 싶고 사랑한다 말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게 바로 나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는 헌신짝이 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이제는 돈을 꿔주는 사랑 따위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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