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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an 27. 2023

할머니의 무기

내가 잘하는 한 가지를 찾는 법.

설날. 추석. 단출한 우리 가족이 할먼네에 모이면 할머니는 무기를 꺼낸다. 이번 설날에도 할머니는 딸과 손주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무기를 꺼내 드셨다. 그 무기는 바로 만두 메이커(mandoo maker). 할머니는 설날에 가족을 위해 만두를 만드셨다.


만두 메이커는 제면기 같은 기계다. 면도 뽑고, 만두피도 만들고 하는 그런 요상한 기계다. 할머니의 것은 매우 오래되어서 그게 언제 만들어졌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할머니께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옛날 자연농원에서 일할 때 월급을 모아서 사셨다고 했다. 영원한(ever) 땅(land)이 자연농원이었을 때니 무지막지하게 오래된 이야기다. 아주 오래전부터 할머니는 이 만두 메이커로 만두를 빚으셨다. 할머니가 만든 만두는 우리 가족 올타임페이버릿이다. 만두를 찐 날이면 가족당 10알씩 거뜬히 해치웠다. 만두는 단연코 할머니가 제일 잘하는 음식이었다. 할머니는 만두 메이커만 있으면 모든 가족의 허기를 해치워버릴 수 있어서 만두 메이커는 할머니의 ‘무기’이다.


할머니와 같이 만두를 빚으며 은연중 나의 ‘무기’는 뭘까 생각했다. 잘하는 게 뭐지? 좋아하는 건 얼추 알겠는데 딱 잘하는 한 가지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건축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지만, 어느 것도 잘한다고 말하기 부족해 보였다.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만두를 빚다 엄마가 건네준 갓 찐 만두를 먹었다. 아뜨뜨뜨 호호. 한입 베어 물자 나의 허기는 해치워졌다.


그러고 보니 저번 주 엄마와 카페에 갔을 때 일이다. 엄마는 내가 본가를 방문하기 전 이틀 내내 아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셨다고 한다. 아들 걱정이 더할 나위 없이 극진했다는 엄마의 고백이 왠지 모르게 감사했다. 그러다 엄마는 내 글에 관해서 이야기하셨다.


“네 책은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히더라? 그래서 그때 하루 만에 다 읽었고 아빠한테 넘겨줬지.”

“내 책이 잘 읽혀? 괜찮았어?”

“엄마한테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금방 읽혔어. 생각이 잘 읽혀서 좋았어.”


까무잡잡한 내 볼은 붉어지진 않았지만 부끄러웠다. 칭찬에 어색한 나는 우리 엄마니까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다 했다.


그러고 보니 또 얼마 전 친구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재민아 글 엄청 잘쓰더라 ㅎㅎㅎㅎ 재밌어 책’. 또 그전에는 전 직장 동료에게 ‘재민선배 책 넘 잘썼어요 진짜. 독서 모임에 홍보 중이에요’라는 메시지도 받았다. 얼마전에는 브런치에 올린 글이 조회수가 3만이 넘고 좋아요도 100개가 넘게 눌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하는 여러 활동 중에 글쓰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글쓰기가 잘하는 것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잘하는 한 가지를 찾는 것은 남의 칭찬을 흘려듣지 않는 것이다. 재밌어. 잘했어. 멋있다. 부러워. 좋다. 잘 보고 있어. 응원. 좋아요. 항상 내가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스스로 칭찬이 어려웠던 나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칭찬까지 진심으로 믿지 못했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진심으로 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칭찬을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칭찬을 들으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난 이걸 좀 잘하지’라고 스스로 말해줄 거다. 칭찬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임과 동시에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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