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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Feb 17. 2023

위와 아래에 대한 고찰

나는 과연 수평에 있는가

오늘은 집 뒤쪽에 있는 동네로 산책을 올라갔다. 산으로 향하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동네이자 주변이 내려다볼 수 있는 동네다. 이 높은 동네에는 원룸과 작은 빌라들이 많고 길은 가파르다. 이편한세상 같은 아파트는 아랫동네에 있다. 나는 산책을 할 겸 하염없이 올라갔다. 높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결국 그곳은 아무도 살 수 없는 동네 뒷산이었지만.


올라가다가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를 보았다. 어린이집이 끝났는지 둘은 손을 잡고 집에 가는 듯했다. 이렇게 가파른 경사를 힘들어 보이지 않게 올라간다. 나는 조용히 아이와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을까?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빌라에도 가보았다. 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축 빌라였다. 가성비가 좋아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장재와 뒷산을 풍경으로 담을 수 있는 창들이 많이 뚫려있었다. 단열이 잘되나 보다.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퇴근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외제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부자인가?


이런 동네에 있는 놀이터와 공원은 계단식이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경사를 이용한 놀이터는 대지의 기울기에 따라 디자인되어 있다. 같은 공원 안에도 수많은 계단이 있어서 나무나 풀이나 꽃이 있을 공간이 별로 없다. 몇몇 아이들이 숨을 헉헉거리며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을 타려면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 올라간 미끄럼틀 위에서 보이는 풍경은 드넓지만 갑갑했다. 모든 걸 내려다보지만 볼 수 있는 건 꽈 막힌 원룸 빌라촌과 아주 좁게 형성되어 있는 개천이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아래에 보이는 이편한세상 아파트.


언덕에 있는 이 동네에서 느낀 것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 역겨운 내 마음이었다. 아이와 엄마를 보면서 저런 형편에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좋은 빌라를 보면서 왜 외제 차를 끄는 사람이 이런 동네에 살지 궁금했다. 계단식 놀이터와 공원을 보면서 나는 어릴 적에 이런 곳에서 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모든 생각들은 속을 메스껍게 했다. 어쩌면 이 동네를 산책하면서 나는 동네 자체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겼을 수 있다. 이건 연민의 사전적 정의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저 동네에 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모든 삶은 축복받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모두는 평등하다고 생각하던 내 모습은 위선이고 가식이어서 역겨웠다. 30여 년을 살면서 사회와 학교와 직장에서 체득된 나의 무의식은 자신이 그나마 이 정도 살아서 다행이고 천한 직업은 갖기 싫으며 몇몇 남들보다는 위에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내가 처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들이었기에 현재는 위선적이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체득하지 못 한 채 가지고 있는 척한 나는 가식적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진정 평등이란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면 체득하고 싶다. 내가 살면서 가지게 된 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생각들을 잊으며(unlearn) 올바른 가치로 마음을 만들고 싶어졌다. ‘배운 게 없으니까 저렇게 살고 똑똑하지 못하니까 천한 직업을 갖는 거야.’ 나는 이 모순적인 말들을 순순히 인정하고 이제 맞춰 살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직접 겪으면서 깨뜨릴 수도 있다. 나도 퇴사를 하고 돈을 적게 벌면서 똑똑하지 못하고 천한 사람이 되었다고 내 몸은 말했으니까. 그러니 진심으로 사람들을 귀하고 평등하게 바라볼 줄 아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똑같이 스스로를 평평한 땅 위에 고귀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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