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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Nov 17. 2023

그의 주사(酒邪)를 알아보자(1)

술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술을 잘한다는 말은 결코 주량이 쎄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남들보다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고 칠일은 매우 적어지니 좋긴 하겠다.

그건 어디까지나 알코올 해독능력이 극강으로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주량을 알고 기분 좋을 때까지만 마실 줄 아는 사람을 뜻한다.

통제능력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척도이다.

술은 인간이 발견한 선이자 악이다.

잘 쓰면 사람과 사람을 친밀하게 만들어주지만

잘 못쓰면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술을 잘하는 사람이 좋아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줄 수 있으나

술을 못하는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골치가 아프다.

나는 그럼 사람과 만나지도 살지도 못하겠다.


반면

나의 주량은 20대 중반까지는 최고점을 달렸다.

가끔 친구들과 놀다가 남성팀과 합석을 하게 되면 더욱더 주량을 늘어났다.

간의 알코올 해독능력이 심히 좋았던 탓에 남들에 비해 잘 취하지 않았다.

최고 주량은 소주 9병.

이 모습을 본 친구는 아직도 전설처럼 모임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덕분에 친구들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 나에게 소개하여 그의 주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생겼다.

안타깝게도 통과한 친구들을 많지 않았다.

나에게 객기를 부려 보드카 2병을 마시더니 응급실로 실려간 남자애도 있었다.



나는 나의 주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취하지 않은 척하기이다.

취한 모습을 남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라 정신줄을 꽉 잡고 있다.

특히나 남자에게 주량을 들키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싶다.

일종의 체력과 주량에 대한 자격지심이 발동하는 듯했다.


30대가 되어서는 체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을 느꼈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과에 지장이 생겼다.

숙취가 심했고, 회사에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없던 주사가 생겼다.

조금만 과하게 마셔도 속이 받아주지 않아 바로 게워냈다.

20대에 나의 간을 다 써버린 모양새였다.


다행히 나의 송강은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 술이 근육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았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을 더욱 진실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날의 분위기와 술 한잔에 빌린 취기 아니겠는가.



그가 오랜 출장에 다녀왔을 때 나는 와인을 한 병 사놓았다.

고백하건대, 30대가 돼서야 와인을 마셔봤다.

20대에 돈이 어딨 는가. 많이 빨리 마셔도 가격 부담이 없는 깡소주가 최고다.

그러나 나도 이제 돈을 벌어왔고, 우아 좀 떨어보고 싶은 터였다.


다이소에서 산 와인잔 두 개와 와인전문점에 추천해 준 입문용 와인을 준비했다.

다행히 그도 와인을 처음 마셔봤다고 했다.

와인 따는 건 전부터 봐왔던 지라 대충 지렛대원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알았다.

와인오프너로 코르크마개에 돌려 넣고, 입구에 오프너를 걸쳐 손잡이를 쭉 내리면

쑥 코르크가 올라오고, 나머지는 T자로 만들어 위로 훅 뽑는다.


물론 아름답게 뽕 하고 오픈이 되면 좋겠으나 그는 굉장히 당황해 보였고,

결국 내가 땄다.

순간 정적과 난처하고 뻘쭘한 웃음이 이어졌으나

나는 괜찮다. 그렇다. 괜찮았다. 다음에는 잘 따보라며 웃어넘겼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한 손으로 잡아들고 높게 따라주려고 했다.

와인병 입구를 따라 자줏빛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까운 술...

또 그는 뻘쭘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 그렇다. 괜찮으려고 한다.



우리는 즐겁게 와인을 마셨고,

한병 정도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셨다.

서로 살짝 취기가 돌고, 마음이 아쉬울 때 그만두었다.


어, 이 사람 꽤 나와 잘 맞는걸?

그렇다면 다음에는 다른 종류의 술을 먹여봐야겠다.

그의 주사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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