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로 Jan 01. 2024

성형을 좋아하는 시아버지

시아버지와의 만남은 참으로 강렬했다.

구남친과 연애하던 시절 아버님과 만날 기회가 생겨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만났다.

구남친 아버지는 남다른 패션센스를 자랑했다.


구찌 로퍼에 스톤아일랜드 검정 패딩 조끼, 달라붙는 청바지, 선글라스를 끼고 테슬라를 타고 나타나셨다.

분명 듣기로는 환갑이 넘었다고 했는데, 패션은 거의  MZ세대 뺨치는 듯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옷차림에 몇 천이 둘러져있었다.


구남친은 옷을 사지 않아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참으로 검소한 사람인데

구남친의 아버지는 정반대이니 아이러니하였다.


게다가 아버지는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허허허 웃으며 맥주를 시켜 나에게 따라줬다.

구남친은 자신의 아버지 술잔을 뺏어 들었다.


'아빠는 암 때문에 수술도 했으면서 술 마시지 마.'

'아이, 한 잔은 괜찮아. 며느리 왔는데 짠은 해야지.'


며느리란 소리에 흠칫했으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잔을 들었다.

그제야 아버님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선글라스 너머 처음 본 그의 눈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아빠 눈 건드렸지? 뭐 또 했지?'

'아니, 뭘 해, 하기는. 근데 표가 나나?'

'솔직히 말해 뭐 했잖아.'

'살짝 찝었지 뭐 허허허.'



그렇다 시아버지는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온 것이다.

오롯이 미용 목적으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오셨다.

눈이 더 커지니 젊어 보이지 않냐고 물었다.


첫 만남에 구남친의 아버지 쌍꺼풀 수술 후기라니. 너무도 놀라웠다.

같이 시력 교정도도 했다면서 얼마 정도 들었다는 소리를 술을 마시면서 하셨다.


바로 시아버지는 폼생폼사에 우리 세대에서 흔히 말하는 욜로족이었다.

젊은것이 좋고, 늙어 보이는 건 극도로 싫어하신다.

때문에 옷도 요즘 젊은 애들이 입는 옷을 입고, 머리고 항상 까맣게 염색을 하고 다니신다.



얼마 전 시아버지는 갑자기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니 술을 먹고 아스팔트에 넘어져 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아프다며 난리가 났다.

그리고 얼른 영상통화를 하자며 시아버지의 성토는 5차례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나와 남편 시아버지 3 이서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영상통화 너머로 눈을 보니 피멍이 퍼렇게 들어있었다.

우리는 아버님에게 핀잔을 주었다. 대체 어떻게 술을 먹고 넘어지신 거냐고.

사실 아버님은 술을 마시고 아무 곳이나 잘 주무신다.

(저번에는 자신 친구랑 매운탕 집에서 술 마시고 자다가 일어나서 영통을 한 적도 있다.)

익히 주사를 알고 있던 우리는 병원은 갔냐고 나무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웃으며



'난 60년 동안 술 마셔도 아스팔트에 절은 안 한다.'

'아니 아까는 술 마시고 넘어졌다며. 왜 그러는데.'

'아니 술 안 마셨다니까. 이제 눈 겨우 떠진 거야. 사실 이마부터 거상 했어. 하하하.'

'거상? 그게 뭐야.'



그렇다. 아버지는 피부가 처지는 것이 싫었는지 이마부터 절개를 하여 피부를 들어 올리는 안면 거상술을 받으신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안면거상술을 설명하자

'아이고 아버지. 제발.'

남편의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는 세상 기뻐하며, 확 젊어지는 것 같지 않냐며

'나 이제 두 번 장가가련다. 이러다가 네 형 소리 들을 것 같다.'

껄껄 웃어댔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버지 다행히 술 먹고 다친 건 아니라는 소리네요. 아들이랑 이제 형제 먹어서 좋겠어. 그만 좀 젊어지세요.'

'거상 한 지 2주 넘었어 이제 겨우 눈떠진다. 피멍 들고 눈이 아예 안 떠져서 죽을 뻔했어.'


대체 죽을 뻔하는 걸 왜 하시는 것일까.

아버지 마음이니까 뭐라고 할 말은 없다만, 장난도 장난도 이런 장난이 없다.



다만 이 모든 것은 구남친 어머니에게는 비밀이어야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빌려간 돈은 일절 갚지 않고 본인의 욜로를 위해 살고 계시니까.

복창이 터지는 구남친 어머니는 이 사실을 절대 알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쉿.

나는 제 3자 이다. 둘 부부의 일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 그저 웃어야 한다.

늘 다짐한다.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 보면 콩트 같기도

비극 같기도

또 한 편의 시트콤 같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참으로 벅찬 시가의 약속 개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