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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Dec 25. 2023

나에게 참으로 벅찬 시가의 약속 개념

내가 못된 며느리인가

나에게 시가는 참으로 벅차다.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관계가 심하게 버라이어티 하여 글로 차마 쓸 수 없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건 서로 따로 사신지 꽤나 오래되었고, 앙숙처럼 지내신다.

덕분에 시가에 내려갈 때는 어머님 따로 아버님 따로 뵈어야 한다.

체력과 시간이 두배로 들고 신경도 두배로 든다.

두 분이 그렇게 다르게 사심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부분이 있다.

바로 약속에 대한 개념이다.



한 날은 남편이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해 시어머니와 점심 약속을 잡고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전화가 와 일이 생겼다며 시간을 미루자고 했다.

한 시간을 미뤄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린 내려가다 배가 고프니 적당히 주전부리를 하려고 했다.

어머니는 전화가 와서 또 시간을 미뤘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아야겠다.

남편이 알아낸 이유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데이트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2번까지는 웃으며 넘겼다.

그래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훨씬 중요할 수 있지.

아들과의 선약이 뒷전일 수 있지.

그러나 며느리인 타인이 함께 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을 봐서 참았다.


어머니는 야속하게도 또 전화가 와서 약속을 미뤘다.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때는 남편이 결국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남자친구와 장어를 잔뜩 먹고 나온 어머니는 우리에게 한우를 사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저녁에 보자고 할걸 그랬다.'


1시에 만나기로 한 어머니는 저녁 7시 40분이 돼서야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반나절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마저도 본인 아들을 오래 못 본 것이 아쉬운지, 다음날 일을 나가신 어머니는 자신의 일 쉬는 시간에 오라고 했다.

꾸역꾸역 나는 참고 나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어머니가 이렇게 약속을 미루는 건 솔직히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자식인 당신은 어머니가 이해 갈지 몰라도

며느리인 나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이 있고 몇 달 후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시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머니는 혼자 심심해지셨는지 연락이 부쩍 잦아졌다.

편은 30여 년 넘게 한 번도 어머니가 자신이 사는 공간에 오지 않은 것을 서운해했다.

어머니는 본인의 지역을 떠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고 들었다.


이번에 남편은 어머니에게 일도 그만뒀으니 놀러 오라고 말을 했다.

나도 흔쾌히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왜냐면 남편이 너무도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배우자로서 채워줄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겠다며 토요일로 약속을 잡았다. 기차를 타고 오시기에 우리가 중간 지점으로 모시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있는 지역이 갈아타고 와야 하는 거리라 어머니 편하게 모시기 위해 2시간 거리를 운전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에 돌아가시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또 전화가 왔다. 자기가 토요일 오전에 일정이 있으니 저녁 5시 넘어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만나니까 조금밖에 못 본다며 월요일까지 있다가 내려가시겠다고 했다.

남편은 월요일에 직장에 가야 하니 그건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에 정말 화가 났다.

또 같은 날에 다른 약속을 맘대로 잡으시고 늦게 오신다고? 우린 그럼 밤운전을 해서 2시간을 움직여야 하는데?

게다가 본인이 늦게 오신다고 해놓고 적게 보는 게 아쉬우니 월요일까지 있다가 가겠다고?


나는 우리의 선약이 자꾸 뒷전이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날에 또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약속이 잡힌 건지.

왜 하필 우리를 만나기로 한 그날 또 그런 건지.

이러다가 저번처럼 약속을 미루고 기차도 안 타고 오시면 우리는 타지에 있다가 그냥 와야 하는데

더 최악인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엄마가 자기를 짧게 보는 쪽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선택이다.

토요일에 몇 시에 볼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오전에 무슨 일을 하고 늦게 온다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정확히 시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잘 못한 건 월요일까지 잔다고 한 것이니, 그건 잘랐다.


나는 반박했다.

일반적으로 먼 길을 오시고, 우리가 중간지점으로 데리러 가기로 했으면

적어도 그건 밤이 아니라 낮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몇 시간 겨우 보려고 왕복 6시간이 넘는 일정을 짜냐.

어머니 본인이 적게 보는 게 아쉬우니 월요일까지 있다가 간다는 것 아니냐.

어머니는 토요일 늦게 온다고 하고 당신은 일요일에는 가라고 하면서

그럼 우리가 모시러 가고, 어머니는 오시는 의미가 뭐냐.


남편은 완고했다.

그건 엄마 선택이지. 당신이 이해 안 간다.

그냥 우리도 중간지점에서 놀고 있다가 늦게 오면 그냥 데리고 오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왜 약속을 맘대로 바꾸시는지 모르겠다.

난 저번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에 또 약속을 잡으시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남편은 시어머니 편이었다.

우리가 정확한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편이었다.

나는 분명 토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고 했다.

일반적이고 통상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누가 먼 길 나서는 약속에 또 약속을 집어넣어서 늦게 오고 적게 보는 게 아쉬우니 더 있다가 가겠다고 통보하냐고.


남편은 더 이상 나와 실랑이하는 것이 싫은지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난 중간에서 힘들다. 나는 엄마가 이해가지만 집안이 달라서 와이프가 죽어도 이해를 못 한다.


어머니는 언성을 높이며 말씀하셨다.

'난 너희와 시간을 정한 적은 없다.'


남편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엄마는 시간을 정한 적이 없어. 난 그래서 엄마 이해해'



그렇다.

오늘 알았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남편은 자꾸 집안이 달라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약속개념이

너무나도 나와 상반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난 친구들과도 저렇게 약속을 잡지 않는다.



정말 내가 잘 못 된 걸까.

내가 못된 며느리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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