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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Jan 02. 2024

토했던 시아버지와의 고속도로 드라이브

일전에 시부모의 공통점으로 약속개념을 들었다.

약속개념은 시아버지에게도 동일하다.


이들의 집안은 약속을 대략적으로 오후에 만나자로 큰 틀을 잡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대충 몇 시쯤 만나자고 통보한다.

시아버지는 저녁을 먹자며 5시로 약속을 잡았다.

5시에 만나기 위해 일전에 씻고 옷을 다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어디세요.'

'어, 일이 덜 끝나서 좀 늦을 것 같아. 나중에 연락하자.'


그렇게 시아버지는 한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다.

저녁시간이 되어가자 배가 고팠다.

6시가 넘어갈 무렵 남편에게 아버님께 연락을 드려보라고 재촉했다.


'아버지 일은 다 끝났어요?'

'아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일이 터져서. 한 시간 뒤쯤 보자.'


나는 남편이 이쯤에서 커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알겠다고 하고 끊고 우리는 우리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버님이 일을 더 수습하셔야 하면 서로 다음에 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말했다.

그제야 남편은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아버지 일이 생겼으면 다음에 봐요.'

'아냐, 거의 다 했어. 이제 보자.'


놀랍게도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9시 30분이 넘어서야 고깃집에서 만났다.

시아버지는 굉장히 지친 모습으로 투덜거리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자식이 타지에서 멀리 찾아왔는데,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4시간 이상 넘도록 미뤄진 것은 꽤나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기분 좋게 식사를 하기 위해 고기도 맛있게 먹고 대화도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시아버지는 전화를 받고 굉장히 초조해지셨다.

'사실 네 형이 사고가 났는데, 중간에 멈춰있으라고 했거든. 빨리 안 온다고 화가 났다. 야.'


그렇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형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아주버님이 일하는 도중에 사고가 나서 차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는 우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온 것이다.


'먹고 나와라.'

고기 한판을 채 다 먹기도 전에

공깃밥 뚜껑을 열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냉큼 자리를 떠서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체할 듯이 먹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왜 그런 상황에서 시아버지는 우리한테 온 것이며, 대체 아주버님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시아버지는 내차로 빨리 아주버님께 가자고 했다.

남편과 나는 차에 올라탔고, 시아버지는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말로 하는 내비게이션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행선지를 말해주지 않으셨다.

물어봐도 급한 마음에서 계속 직진, 우회전, 좌회전을 외칠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고 시아버지가 뒤에서 말을 했는데

 소리가 남편에게 들리지 않았다. 물론 나도 못 들었다.

화가 난 시아버지는 큰 소리로

'너는 고속도로도 못 타냐.'

고성에 깜짝 놀란 나는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큰 사고가 날뻔했다. 고속도로로 운전대를 훅 틀었던 남편은 화가 들끓었다.

'아니 밥 먹자고 해서 나왔더니, 지금 형이 이런 상황이면 오질 말아야지! 그리고 지금 운전 내가하잖아. 주소를 알려달라고.'

'시끄럽고 내가 가자는 대로 가면 되지 말이 많아.'


나는 살얼음을 걷는 듯했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고성이 오간 적이 없고, 이런 고성이 오갔다는 것은 절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나는 어릴 적 고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런 상황은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었다.

공황장애가 찾아오는 듯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쉬기 어려우며 어지럽고 곧 기절할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고속도로를 타게 했고 우리는 한 시간을 달려 어딘가로 인도했다.

정말 지도에는 지 않을 돌덩이가 많은 오프로드 한가운데였다.

지명도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 고장 난 차가 한 대 서있었고, 아주버님이 화가 난 채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버님은 내가 옆에 있으니 화를 내지 못하고, 체념한 채로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냉큼 구석으로 가 저녁에 먹었던 고기를 모조리 토해냈다.

숨을 들이마시고 겨우 내쉬었다.

전부 토하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그들의 일이 전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어둡고 춥고, 몸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남편은 갈 때까지 분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시아버지는 나의 차 기름을 보고는 주유소에 가자고 했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하였으나 그 성황에 못 이겨 주유소에 들렀다.

남편은 숨을 들이쉬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아버지, 제발 이럴 때는 약속을 취소하세요. 기다린 우리도, 형도 너무 힘들잖아요. 나야 그렇다고 쳐도 며느리를 타인이잖아.

너무 우리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아요. 다음에 봐도 괜찮잖아. 정말 이런 상황은 안 만들었어야지.'

'너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고 그냥 가? 그게 말이 되는 일이야? 당연히 보고 가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를 보겠다는 그 마음은 알겠으나 정말 이런 상황이었다면 다음에 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어둠 속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린 아주버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죄송다.

그리고 사고 날 뻔한 상황들을 직면하고 고성에 공황장애가 와 힘들었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다.

이건 누구를 위한 만남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기심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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