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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Jan 04. 2024

10년 만의 시댁모임에 아무 말 대잔치

나는 가족이 되고 싶지 않았다

구남친 형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사귄 지 6개월 차였던 것 같다. 구남친 현남편은 나에게 결혼식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형의 결혼을 앞두고 예복을 맞추는 일 때문에 가족모임을 소집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형은 전부 같은 지역, 10분 거리에 모여 산다.

그러나 나와 구남친은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지에 살고 있어 시간을 내어 가야만 했다.


형은 결혼식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지라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게 서로 만나지 못한 상태로 전화로 이야기를 하던 도중 형과 구남친 사이에 말싸움이 일어났다.

형은 아버님과 남동생에게 본인이 직접 매장을 골라 맞춤 양복을 해주고 싶었다.

아버님과 구남친은 여기서 양복을 맞춰버리면 다시 와야 하니, 비용만 주면 알아서 사 입는 게 좋겠다고 했다.

둘의 싸움은 활활 타올랐다. 물론 나는 구남친편이었다. 우린 또 시간을 내어 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움이 심해지자 구남친은 다시 우리 지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탔다.

이런 모습을 전해 들은 어머님과 아버님은 둘을 어떻게든 화해시키기 위해 한자리에 모았다.

둘을 다그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 형, 남동생까지 여기에 형의 여자친구와 남동생 여자친구

즉, 예비 며느리 2명까지 총 6명이 모인 자리가 어머니 집에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 둘에게 형제끼리 싸우는 것 아니라며 훈계를 하셨다.

서로 소주를 한잔씩 받고서는 분위기가 다소 풀어진 듯하였다.


구남친은 이렇게 가족이 전부 모인 것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즐거워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를 하신 지는 오래전 일이고, 구남친이 외지에 나와서 산 것도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한 번도 다 같이 모일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남친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모여있는 자체에 감사하는 듯했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니 곳곳에서 각개전투가 일어났다.

어머니 아버지는 서로 그동안에 쌓였던 일들이 터져 나오며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당장 돈을 갚으라며 어디 갔냐고 고성을 질렀다.

아버지는 내가 돈이 어딨 냐며, 이럴 거면 가야지 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면서도 누구 말이 맞는지 둘째 아들의 여자친구인 나에게 계속 물어봤다.


'니네 아빠가 잘못하지 않았니? 내가 누굴 만나서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그치? ㅇㅇ아'

'뭐 나만 잘못했나? 니네 엄마가 하도 뭐라고 하니까 내가 나가서 사는 거 아냐. 부끄러운지 알아야지 그치? ㅇㅇ아?'

여기서 ㅇㅇ은 내 이름이다.


정말 가운데 끼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맞죠 어머니 하면 아버지가 버럭, 맞죠 아버지 하면 어머니가 버럭

구남친은 중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결혼할 형의 여자친구, 첫째 며느리와 묘한 신경전을 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둘 다 절대 지지 않는 말투였다. 살벌했다. 만만치 않은 형님이란 것을 눈치챘다.

여기서 형과 아버지는 둘이서 결혼 앞두고 친인척을 어디까지 돌아야 하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사업 이야기를 하더니 다투기 시작했다.


'아 아빠랑 이야기하면 말이 안 통해'

'니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 아니면 니가 어디서 일해.'


 또 어머니는

'저 놈의 집안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우리끼리 편을 먹어야 해. 아주 그냥 지들만 잘났다.'

또 갑자기 형이 나타나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어라.'


정말 여기저기서 서로를 향한 비난과 무시가 난무했다.

목소리는 높아져가고 기분이 상할 이야기들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그 중간중간 나는 여기저기서 이름이 불리면서 동네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맘이 상할 대로 상한 형과 여자친구는 집으로 가버렸고

아버지도 집에 가겠다며 우리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광경에 나도 집에 가고 싶었다.

이쯤 되니 정말 나도 결혼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까지 생겼다.

이런 곳에 어떻게 더 있을 수가 있지.

왜 구남친은 날 여기에 두는 거지.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고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구남친에게 우리도 집에 가자며 재촉했다.

그는 시간도 늦었으니 그냥 자고 가자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서로 헐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내내 구남친은 나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솟았다.

10년 만에 모인 가족 모임을 이렇게 나왔어야만 했냐며 화를 냈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고, 배려 없는 가족은 처음이었다.

나는 엄연히 아직 타인이고, 며느리가 되어서도 다른 집안의 손님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댁의 이런 싸움은 그냥 안부 정도라는 것을.

그들에게 나는 예비 며느리고 곧 가족이었다.  

가족끼리는 어떤 말을 해도 용서가 되는 시댁에 나도 가족으로 참여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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