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학교 4학년이던 1999년 늦가을부터 다니기 시작한 첫 직장을 6개월도 안돼 때려치웠어. 바코드 리더기를 주로 수입해서 팔던 무역회사였는데 급여가 적기도 했고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게 조금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어. 어딜 다니든 결국 월급 받는 직장인의 삶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란 걸 아직은 잘 모를 때니, 좀 뽀대 나는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같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 뛰쳐나왔던 거지. 꿈꾸는 자 이루게 되리라는 망상에 휩싸여 토익 점수 좀 더 끌어올리고 몇 개월만 분투하면 대기업이나 금융의 메카, 여의도 입성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어.
2000년의 어느 봄날, 퇴사 이유가 어찌 됐든 결국 난 생애 처음으로 공식 백수가 됐어. 새천년의 시작과 IMF구제금융 여파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경제상황으로 사람들도 희망이란 걸 다시 조심스레 품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지. 하루 종일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인터넷 사이트, 중도 게시판, 학생회관 게시판을 뒤지며 취업 정보를 얻고 입사원서를 내는 일의 반복이 힘들 건 그리 없었어. 단지 비어 가는 은행 잔고와의 기싸움이 힘들더라고. 첫 직장에서 반년 조금 넘게 꼬박 모은 월급은 500만 원도 채 안됐고, 대출금리 높기로 악명 높은 **캐피탈의 학자금 대출 상환금도 매달 내야 해서 느긋하게 취준생의 일상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지.
한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에 맞춰 은행 잔고도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니 금세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뽀대를 향한 내 고고한 이상도 현실의 땅바닥 위로 함께 수직 하강했지.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서자 금융사나 대기업을 고집하던 내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자취를 감췄어. 그리고 일단 어디든 붙고 보자는 백수다운 절박한 태도로 난 열심히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내고 있었고, 또 열심히 탈락 중이었지. 돌이켜보니 참 고생스럽게 이십 대의 끝자락을 향해 떠밀려 가던 시절이었던 것 같네.
여름도 중심을 지나쳐 가을로 기울어져 갈 때쯤엔, 대기업과 금융회사 취직은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글렀다는 선명한 좌절감에 나는 서서히 압도돼 가는 중이었어. 동시에 몇십만 원 단위까지 떨어진 은행 잔고가 주는 송곳 같은 불안감,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후배들과 인사할 때마다 찾아드는 이지러진 자괴감이 내 멘털을 바닥부터 조금씩 균열시키고 있었지. 그런데도 뭔 고집인지 그놈의 뽀대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녔나 봐. 조급한 마음에 핸드폰 액세서리를 수출하는 자그마한 무역상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와 버렸거든.
해는 갈수록 짧아지고 원하는 회사는 입사 원서를 접수해도 일차 서류심사 통과도 쉽지 않았지. 기졸업자가 입사원서를 낼 수 있는 곳만 하염없이 줄어들어갈 뿐이었어.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추석을 훌쩍 지나쳐 상강을 향해 흐르고 있었어. 올해를 넘기면 취직은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많이는 아니고 들으면 알 만한 조금만 더 그럴싸한 곳에 입사하고 싶은 맘을 끝내 버리지 못하겠더라고. 결국 집에서 식비며 교통비를 타서 쓰는 후안무치한 상황까지 내몰렸을 때쯤, 한 증권사의 채용 공고를 중도 앞 취업 게시판에서 보게 됐어.
K** 증권? 처음 들어본 증권사였는데 어쨌든 본사 영업추진부에 TO가 생겨 신입사원을 한 명 뽑는 거 같더라고.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상업 은행인 조O은행의 자회사 정도였던 조O증권이 최근에 대만계 증권사로 매각되면서 이름이 바뀐 거였어. 지원자격이 딱히 까다롭진 않았는데 토익 점수가 900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띄긴 했지. 서류심사나 통과되려나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메일로 입사 원서를 전송했어. 아니, '혹시나'에 워낙 쓴 맛을 많이 봐온지라 그 맘마저 갖지 않으려 애를 쓰며 그저 덤덤하게 고단한 백수이자 취준생의 일상에 집중하려 애썼어.
K** 증권으로부턴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어. 그리고 대기업을 향한 치열한 바늘구멍 취업 경쟁에서 승리한 경험자들의 온갖 팁을 참고해 마련한 내 구애편지들은 하나같이, ‘유감스럽게도’로 시작하는 문구와 함께 거절당하는 중이었고.
영화 <화양연화>
11월이 됐고 구직의 길은 여전히 대략난감이었지. 길어지는 취업 실패로 쪼그라진 자존감을 겨우 부여잡고 오랜만에 콧구멍에 바람 좀 넣을 겸 평일 오후의 서울극장에서 나른하게 혼영 중이던 어느 날이었어. 영화는 왕가위의 신작 ‘화양연화’. 평일이고 또 오후 시간대라 텅텅 빈 상영관에서 반쯤 눕다시피 한 채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지. 스크린 위엔 국수 통을 든 채 좁고 경사진 계단을 스쳐 지나가는 양조위와 장만옥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고 있었고, 그 위로 ‘둥둥둥, 둥둥둥♬’ 첼로 선율이 강조된 메인 테마곡이 흐르던 그.순.간. 뒷주머니에 꽂아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어. 무음으로 해놨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 상영관 입구 쪽으로 가다가 핸드폰 액정을 슬쩍 봤어. 모르는 번호네? 문을 열고 상영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청진 씨 되시죠? K** 증권 인사과 OOO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가능하다마다요! 그리고 전해준 내용은 내가 서류전형에 합격했고 이틀 뒤 동여의도에 있는 K** 증권 본사에서 면접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거였어. 기적이 일어난 거야! 할렐루야! 서류접수 마감일로부터 일주일이나 지나서 당연히 이번에도 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만옥이 누나한테는 미안하게도 전화를 받고 나서는 화양연화 주인공들의 멜랑콜리에 전혀 동참할 수가 없었어. 오 분 전만 해도 인생 쓴맛인 건 잘생긴 영화 속 양조위나 나나 매한가지군, 하며 동병상련을 느꼈는데 말이지.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영어 인터뷰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티 안 나고 겸손하게 잘난 척만 적절히 해주면 되는 건가. 서류전형엔 합격했지만 워낙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상태에서 오랜만에 보는 면접 생각에 이러저러한 잡념에 집중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영화관을 조심스레 빠져나왔어.
만옥 누님, 미안. '화양연화'는 취업과 함께 제 인생의 화양연화가 시작되면 꼭 다시 보러 올게요. 행운을 빌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