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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Jun 01. 2022

소원을 말해 봐

지니(genie)가 되다

 두 사람이 있다. 나와 피를 나눈 이 둘은 모두 죽음이나 절벽 같은 단절의 순간을 마주한 채 내게로 선명해졌다. 늘 거기와 여기 어딘가에 있었지만 언제나 있는 것들은 원래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존재조차 깜빡 잊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각자 생의 이야기가 불친절하고 거칠게 펼쳐지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다시 서로를 간절히 불렀다, 가족이라고, 우린 가족이 아니더냐고.


 어두운 오후, 희미한 구원을 더듬어 뻘밭으로 이어진 갈대숲을 걸어온 우리는 그곳에 진흙 투성이의 맨발로 함께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텅 빈 몸을 서로에게 기울이자 휘파람 같기도, 울음 같기도 한 소리 하나가 갈대숲을 맴돌다 내 안에서 공명했다. 휘우휘, 휘우휘......

 그래, 이번엔 내가 아닌 그들의 차례인 것이다. 난 부서질 듯 가늘고 창백한 누나와 조카의 흰 손목을 움켜쥐고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오다 뒤돌아 말했다.

 

 '소원을 말해 봐. 난 다정한 지니가 될 거야. 어서, 어서 소원을 말해 봐.'

 


누나 

 늘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던 간호사 출신 막내 누나가 지난가을 암에 걸렸다. 가족 중 아무도 걸린 적 없는 암에 걸린 것이다. 꽤 심각한 상횡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쉽지 않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재발을 막기 위해 식단 관리도 철저히 진행 중이다. 난 누나가 그렇게 다 괜찮아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나는 내게 말했다, 간.절.히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그리고 함께 가지 않겠냐고. 그곳은 다름 아닌 800km를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몸속은 온통 잘라내 고치고 박박 닦아 광택마저 나는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영혼이 잔뜩 긁혀 있는 것만 같다고 누나는 말했다. 뿌리가 뽑힌 채 부유하고 있다고도.

"이곳에 정주(定住)하고 싶어. 그래서 떠나고 싶어. 떠나서 길 위 사람들의 진심을 듣고 보고 마침내 안도하고 싶어."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누나가 진심으로 바라고 되찾고 싶은 건 결국 단단히 뿌리 박기 위해 필요한 인간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아닐까. 그 단서를 찾아,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얼굴과 마음을 찾아 낯선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건 몸을 치료하는 폭력적인 과정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어떤 투명하고 단단했던 마음을 두려움 속에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치유의 의식(ritual) 같은 게 아닐까.


 누나에게 처음엔 심리 상담을 권유했지만 원치 않았다. 그보다는 더 치열하게, 그리고 간절함을 담아 천천히 이 과정들 혹은 의식의 순간순간을 빠짐없이 사람들 틈에서 겪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식의 장소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누나는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산티아고인지는 묻지 않았다. 이미 그 이유를 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15년 봄, 누나와 난 도원결의라도 하듯 그해 가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걷기로 약속했다. 때늦은 성장통을 둘 다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잘 극복하고 싶었고,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순례길이 걷고 싶어졌다. 길고 험난할 길을 걸으며 뒤틀리고 혼란스러운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걸음걸음에 실어서 보내주고 싶었다.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필요한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산을 함께 오르며 아이처럼 들뜬 맘으로 순례길을 준비했다.


 하지만 누나는 나와 함께 가지 못했다. 수험생이었던 조카와 매형의 걱정이 누나의 의지를 꺾어 놓은 것이다. 이후 누난 버릇처럼 어서 다시 짐을 싸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자고 내게 얘기해 왔다. 그러나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우릴 놓아주지 않는 일상에 매여 결심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누나가 많이 아프고 나서야, 첫 약속으로부터 7년이 흐른 2022년 봄에서야 산티아고 순례길로 함께 향하기로 우린 다시 결의했다. 7년 전보다 누나는 가지 못할 이유가 오히려 더 많아졌다. 7년 전만큼 젊지 않으며 암에서 완치된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뭐, 반대한다 해도 누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태세이기도 하지만). 이미 산티아고를 한 번 다녀왔고 비교적(?) 건강한 남동생인 내가 동행하기로 해서일지 모르겠다.


 한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내가 다른 가족이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순간이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이나 남아 있을까. '소원'이란 낯간지러운 말을 해본 적도 까마득한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한다고, 지니가 되어 줄 수 있냐고 물어봐 준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내게도 선물 같은 경험일지 모르겠다. 감사할 일이다.    



조카 

 7남매이다 보니 조카들이 참 많다. 그중 둘째 누나의 아들인, 내게 세 번째로 찾아온 조카는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 살면서 삼촌과 조카보단 큰형과 막내 동생처럼 함께 커왔다. 끼와 재능이 넘치는 조카는 면서 애타고 걱정되는 일보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경험을 더 자주 대가 없이 나와 가족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조카가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상황과 개인적인 여러 문제가 겹치며 의도치 않게 삼 년 가까이 일을 쉬게 되었다. 한창 경력을 쌓아나갈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찾아온 짧지 않은 경력 단절의 시간은 취업에 꽤 큰 장애물로 작용한 듯다. 온갖 애를 써가며, 간.절.히 일자리를 구해 보았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오히려 친하고 아끼는 사이일수록 자신의 약한 모습, 바닥까지 떨어져 거기 단단히 결박당한 초라한 모습은 꼭꼭 숨겨 두고 싶어지기도 하나 보다. 가끔 보는 조카는 말라갔지만 걱정 어린 가족들 말엔 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늘 자랑스러웠던 조카였기에 알아서 잘 견디고 헤쳐나갈 거라 막연히 난 믿고 있기도 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면 굳이 외면했다. 힘들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고 힘이 돼 주고 싶기도 했지만,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일은 나를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진심이 아닌 것들은 어차피 다 쓸모가 없으며 진심을 보인다는 것은 내가 버티고 선 이 눅눅한 마음의 골방도 내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약을 먹고, 혼자 싸우고, 혼자 웃지 못하는 난 들킬 용기가 없었다. 결국 우리의 텅 빈 마음만 함께 더 커질 뿐이라고 미리 낙담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낼 자신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용기를 낸 쪽은 조카였다. 오랜만에 맥주와 치킨 조각을 앞에 두고 우린 마주 앉았다. 난 늘 그랬듯 쿨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잘 될 거라고 껍데기 같은 위로만을 건네기 바빴다. 하지만 조카는 그날 달랐다.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두렵고 버티기 힘들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도와 달라고까지 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이제 다 말할 거라고 했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간절한지를.


 이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불편했지만 결국 조카의 진심은 나마저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그날 아무것도 없었지만 삼촌도 마찬가지로 바닥을 치는 중이라고, 그래서 너의 절망을 잘 이해한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더이상의 뻔한 위로는 건네지 않았다. 그저, 너의 절망과 간절함 그리고 마주한 그 절벽이 삼촌 안에서도 똑같이 보이고 공명하고 있음을, 그래서 또 다른 나약한 인간임을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조카를 만나고 난 후 기운을 좀 더 냈다. 딛고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으며 걸어도 봤다. 조카의 용기는, 조카의 간절한 소원은 나의 간절함으로도 이어졌다. 도파민이 필요하던 내게, 간절함이 없어 시든 배춧잎처럼 생기 없던 내게 오랜만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긴 것이다, 조카의 재취업이라는.  

 빈약한 내 인적 네트워크를 열심히 가동하며 조카를 위한 작은 기회라도 찾아보려 애썼다. 다행히 친한 친구로부터 조카의 경력과 역량에 맞는 회사를 알고 있으니 면접 기회를 마련해 보겠단 연락을 받았다. 조카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면접을 준비했고 결국 입사가 결정됐다.  


 조카의 간절했던 소원은 이루어졌다. 내 덕인지 친구 덕인지, 아니면 그냥 조카의 능력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조카는 (듣기 좋으라고) '삼촌은 나만의 램프의 요정'이라고 날 한껏 비행기 태웠다. 한동안 내 것이 아니던 간절함을 나도 함께 느꼈으니 사실 조카의 재취업 여정에의 동참은 조카와 삼촌 모두를 위한 윈윈 게임이었다. 감사할 일이다.



소원을 말해봐

 지금은 하지 않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끔씩 이런 말을 거침없이 했다.

 "세상에 공짜 같은 건 없다. 자유로워지고 싶으면 누구에게든 마음의 빚도 지지 마라."


 물론 적당히 걸러서 들을 줄 아는 고등학생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사려 깊지 못한 말이었다. 진짜 힘들 때조차 주위에 도움을 구하는 일은 용기 있는 게 아니라 부끄러운 짓이라고, 그래서 도움을 주는 것 또한 거래와 다름없는 건조한 행위일 뿐이라고 가르친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동화 속 지니가 되어 도움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란 건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다만 누군가의 지니가 돼본다는 게 꼭 일방적인 시혜는 아닐 거라는 건 이젠 슬슬 아는 나이가 되나 보다. 가족이라도 여전히 타인인 그들의 간절함과 절망을 진심으로 함께 겪어 본다는 것은 지니의 소원이자 축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누구라도 좁아터진 램프에 갇혀 있는 나를 찾아와 부드럽게 램프를 문질러 더 깊고 따뜻한 나를 깨워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난 또 다정하게 말할 것이다, 소원을 말해보라고. 어서, 말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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